여기는 3024년의 서울… 북한산에서 아테나 여신상을 발견하다

김민정 기자 2024. 8. 7. 01: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미래의 유물로 만드는
시각 예술가 다니엘 아샴
서울 북한산에서 거대한 서양 고대 조각이 발굴된다. 다니엘 아샴이 이번 개인전 ‘서울 3024’를 위해 그린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신격화된 로마 조각상’(왼쪽)과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 어울리지 않는 시공간이 합쳐지며 초월적인 느낌을 준다. /롯데뮤지엄

전시장의 시계는 3024년. 무려 1000년 뒤의 서울이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노트북·자동차·영화 포스터 등 오늘날 문물이 ‘유물’로 발견된다. 희로애락이 밴 물건들이 1000년이란 시간 앞에서 고고한 유물이 된다.

영화나 책을 통해 주로 그려졌던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 세계)가 전시장에 왔다.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 3024-발굴된 미래’.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유럽·아시아 등에서 전시를 해온 시각 예술가 다니엘 아샴(44)의 개인전이다. 색맹인 작가의 영향으로 작품 색채는 제한되고, 전시 공간은 하얗고 빛이 가득해 남다른 경험을 주는 전시다.

오늘날의 물건이 1000년 후 서울에서 발굴되는 현장을 만든 다니엘 아샴의 ‘발굴 현장’. /김민정 기자

전시장엔 회화·조각·영상 등 250여 점이 펼쳐진다. 과거·현재·미래가 혼재된 작품들이다. ‘상상의 고고학(Fictional Archaeology)’이라는 작가만의 개념이 전체를 관통한다. 상상의 고고학이란 ‘오늘’이 유물로 발견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에서 본 유물 발굴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관람객의 발아래를 유물 발굴 현장처럼 만든 작품 ‘발굴 현장’이 이 개념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준다. 유적지를 탐사하는 느낌을 준다. 석고·화산재·광물 등을 소재로 유물처럼 만들어낸 카메라·전화기·카세트 플레이어 등이 나열돼 있다.

다니엘 아샴이 현대의 물건을 유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하게 된 건 어린 시절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목격한 경험 때문이다. 인간의 무력함, 자연의 압도감, 문명의 덧없음을 절절히 느꼈다고 한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작가가 된 뒤 자연과 인공적인 것이 병치되거나 시간의 경계가 뭉개져버린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아를의 비너스’나 유명 만화 캐릭터 ‘피카츄’, ‘E.T.’ 같은 유명 영화 포스터 등을 유물로 재창조한 작품들도 있다. 소재를 부식시키고 틈새에서 자수정 같은 광물이 자라난 모양으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냈다.

석고와 광물을 소재로 만든, 유물이 된 카메라. 소멸 중인 오늘을 상기시킨다. /롯데뮤지엄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 작품도 생경한 풍경을 선사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영화 ‘스타워즈’ 속 로봇과 고대 조각상, 포르셰 자동차 등이 한 화폭에 담긴 폭 5미터에 달하는 회화 ‘숭고한 계곡, 스투바이탈’, 3024년 서울 북한산에서 아테나 여신상과 로마 조각상이 발굴되는 모습을 그린 신작 회화 두 점도 볼거리다. 고대 조각상의 얼굴과 현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얼굴을 반반씩 붙여, 시대를 뛰어넘은 ‘아이돌’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 다니엘 아샴은 간담회에서 “오늘날의 일상적인 오브제를 과거와 융합시킴으로써 야기되는 바로 이런 혼란이 예술의 목적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기 드문 색맹 작가라는 점도 색다름을 만들어낸다. 모노톤의 색조 사용, 명도 차를 이용해 그려내는 기법이 초월적인 느낌을 더한다. 작가는 “초기에는 하얀색을 많이 쓰고 색감이 배제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후 교정 렌즈 덕에 더 많은 색을 보게 됐다”며 “작업을 할 때에는 색상에 12가지 번호를 매겨 숫자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한다”고 했다. 전시는 10월 13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2만원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