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개천에서 난 수영선수

최정희 아리랑TV 미디어홍보부장 2024. 8. 7.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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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내 고향에는 수영장이 없었다. 면 단위의 마을에 지금은 상수원으로 쓰고 있는 ‘역내’라는 이름의 하천이 있었는데, 인근 초등학교 선생님이 어느 날 수영부를 모집했다. 수영장은 역내였다. 변변한 수영복 하나 있을 리 없는 아이들은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수영부에 오면 점심마다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전교생의 절반이 수영부에 들어왔다. 역내는 순식간에 남탕이 됐다. 여름에 시작된 수영부는 가을이 되고 물이 차가워지면서 다음 여름이 올 때까지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년에 3개월 겨우 연습할 수 있던 수영부에서 도대회 예선에 드는 학생들이 몇 명 나왔다. 설마 하는 사이 도 대회 우승자까지 나왔다. 그 학생은 쌀쌀한 가을에도 홀로 역내서 연습하다가 겨울에만 부득이 대중목욕탕에 갔다고 한다. 목욕탕 주인이 좋아할 리 없었다. 냉탕에서 웬 미친놈이 첨벙거린다며 눈치를 주거나 쫓아냈다. 그렇게 코치도 수영장도 없이 나 홀로 연습했던 그 학생은 급기야 전국체전에서 준우승을 하며 고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격이었다. 읍내의 대중목욕탕마다 우리가 배출한 선수라며 턱도 없는 자랑을 했다.

당시 수영부로 이름을 알렸던 도시의 한 중학교에서 역내 수영부 학생들에게 입학을 제안했다. 하지만 스카우트 대상자 중 한 명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와 헤어지기 싫었던 친구들이 모조리 그냥 남기로 했다. 주변에선 재능이 아깝다고 설득했지만 그저 친구가 좋았던, 어른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초등학생들 우정이었다. 동시에 수영 선수로서 그들의 경력은 거기서 멈췄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 하천에 남은 것이다.

그 멤버 중 하나였던 선배로부터 그 ‘스타’ 선수의 근황을 물었더니 수영과는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 시절 얘기를 하며 어린 마음에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당시를 추억한다고 했다. 그도 아마 이번 올림픽에서 수영 경기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별로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쥐가 난 친구의 발을 서로 모여 풀어주고 차가운 물에 용감하게 입수하면서 나눴던 계산 없는 우정은 큰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는 경험과는 또 다른 행복감과 삶의 동기를 그에게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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