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처 장관 지낸 원로의 일침 “나라 분열돼도 정치 제 역할 못해”
갓 출간된 김진현(88·사진)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저서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가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립대 총장과 문화일보 회장 등을 지낸 김 전 장관이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를 성찰하고 명징한 비전과 과제를 제시한 책 내용 때문이다.
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2048년까지 진정한 자강(自强)을 성취해야 그 후로도 존속할 수 있다는 통찰을 담았다. 지난달 31일 출판기념회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등 100여 명이 몰렸다.
김 전 장관은 1948년 세계에서 가장 빈곤했던 대한민국이 ‘동방(東方) 미국화’ ‘태평양 해양화’ ‘개방 세계화’를 거쳐 경제와 문화 등에서 이미 완연한 선진국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압축적 근대화의 결과, 양극성과 반동성이 겹친 ‘극단성(極端性)’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 공론과 공익을 무시한 가족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갈등과 분열이 지속되며, 출산율이 기록적으로 감소하는데도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4·19 이후 정권 교체는 줄곧 자기 성취가 아니라 상대방 진영의 자멸로 얻게 됐는가 하면, 대통령이 직업 신뢰도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게 현실이라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취약 국가’라는 점을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김 전 장관은 지적했다.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리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핵을 지닌 북한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밀·옥수수·콩 같은 곡물의 수입 의존도가 84% 이상,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6%에 이르는 현실에서, 먹거리와 에너지의 자립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한 “지금이야말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할 때”라고 했다. ‘자강’이라는 목표를 바로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김 전 장관은 본지 통화에서 “대한민국은 근대화에 가장 성공했기 때문에 근대화의 쓰레기가 가장 빨리 많이 쌓인 곳”이라고 말했다.
그 쓰레기란 환경·기후 위기, 민주화 위기, 사회 분열 등 우리가 당장 맞닥뜨린 문제들을 말한다. 김 전 장관은 “이것은 세계 근대 500년 동안 누적된 문제로, 우리가 이것을 해결하면 인류 문명의 선구자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①도덕적·통합적 리더십 확립 ②국가 안보 ③먹거리·에너지·생명자원이라는 국민 안전 확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량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아니라 다시 ‘절약의 시대’가 돼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이 책에 대해 “대한민국의 도약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적폐를 호되게 비판하는 성찰사관(省察史觀)에 충실하다”고 평가했다. 이 책을 비매품으로 출간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은 “초판 분량이 소진된 상태에서 계속 책을 찾는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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