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수달이 남긴 물고기 머리통 낼름 삼키는 뱀...괴수들의 기묘한 공생
수달이 먹다남긴 물고기 대가리 찾아 ‘꿀꺽’
신선하고 썩지 않은 사체는 드물게
통념이 와장창 깨질 때 야생은 더욱 흥미진진해집니다. 인간의 기준과 잣대로 평가해온 특정 짐승에 대한 고정관념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포착되는 순간 재미는 배가되지요. 사자를 밟아죽이는 기린, 뱀을 꼬리부터 국수가락 넘기듯 술술 삼키는 개구리처럼 복수의 서사가 가미되면 짜릿함마저 안겨줍니다. 오늘 소개하는 동영상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뱀에 대한 통념을 송두리째 뒤집습니다. ‘(적어도 야생에서만큼은) 뱀은 오로지 살아있는 것을 공격한 뒤 통째로 삼킨다’는 반석과도 같은 통념 말입니다. 우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계곡에서 촬영된 동영상(cottonmouth acres facebook)을 한 번 보실까요?
동영상 먹방의 주인공인 늪살무사(cottonmouth)는 미국 동남부 지역에 집중 서식하는 독사입니다. 물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만큼 물고기·개구리·거북 등이 주식이고요. 아직 괴수로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악어,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동족까지도 식단에 포함돼있어요. 상황에 따라 머리부터 혹은 꼬리부터 꾸역꾸역 통째로 삼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뱀의 먹방 공식이죠. 그렇지만 이 동영상 속 뱀의 식사 장면은 그런 공식과 결이 다릅니다. 입에 물려있는 건 온전한 물고기의 몸뚱이가 아니라 몸통에서 뜯겨져나간 물고기의 대가리입니다. 둥그렇게 치켜뜬 눈과 선홍색 절개 부위는 얼마 전까지 강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던 놈임을 말해주고 있네요. 평소에 안먹던 스타일의 먹잇감인지 삼키는데 제법 애를 먹습니다.
입속에서 먹잇감을 굴리며 여러 방향과 각도를 계산한 뒤 마침내 꿀떡 넘기네요. 그 순간까지 치켜뜬 물고기의 눈망울이 섬뜩하면서도 애처롭습니다. 이게 자연이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고 뱀의 위장 속에서 흐물흐물 녹아들어갈 운명입니다. 동영상 속 뱀의 모습은 죽은 사체를 뜯어먹는 청소부, 스케빈저예요. 뱀의 신진대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뱀은 육식입니다. 예외적으로 알을 삼키는 일부 종이 있을 뿐, 열매나 꽃을 삼키는 비건 뱀은 없어요. 사냥도 우선 살아있는 것부터 잡습니다. 일단 살아있는 걸 덮친 다음 산채로 삼키거나, 독을 주입해 죽인다음 삼키거나, 온몸으로 칭칭감아 죄어죽인다음 삼키죠. 이미 죽어있는 먹잇감을 노리거나, 심지어 찢어지거나 조각난 사체 일부를 탐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동영상 속 뱀은 ‘헐, 웃기시네’라는 듯 보무도 당당히 물고기 대가리를 세 개나 포식합니다.
동영상 속 머리통의 주인들은 완전체였으면 늪살무사가 감히 삼킬 엄두도 못냈을 크기의 물고기였을 것이 확실합니다. 고작 대가리 앞부분 하나 삼키는데로 저렇게 힘겨워하는 걸요. 이 식사를 가능하게 해준게 수달입니다. 5대양 6대주에 널리 퍼져사는 수달은 강가의 포식자로 군림을 하고 있는데 식사 에티켓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물고기를 잡으면 전부 먹어치우지 않고 남겨두거든요. 서식 지역에 따라 꼬리를 남겨두기도 하고, 대가리를 남겨두기도 해요. 반쯤 먹다 버려두기도 하고요. 그래서 수달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좀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차라리 먹으려면 다 먹어치울 것이지’라는 타박이 절로 나올 정도로요.
이런 깔끔하지 못한 식사법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늪살무사예요. 놈은 몸통을 뜯어먹히고 강바닥이나 물가에 비린내를 풍기며 두눈을 치켜뜬 채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 사체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꾸역꾸역 삼킵니다. 살아있는 먹잇감을 습격해 독을 주입하고 마비되길 기다려야 하는 일반적인 식사법보다는 에너지 효율면에서 앞선다고 볼 수 있죠? 강가의 두 괴수 수달과 늪살무사가 이렇게 기묘하고 은밀하게 공생을 하는 셈이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사냥꾼이 아닌 스케빈저로서의 뱀은 좀 낯선 광경입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국내의 파충류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먹잇감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긴하지만 뱀은 죽은 동물, 온전치 않은 몸뚱아리라도 먹는다고요. 단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죽은지 얼마되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상태라야 가능하다는 거죠. 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살아있는 먹잇감을 포착해서 습격을 하는데, 죽은지 얼마 안돼서 썩어문드러지기 전의 사체의 경우 아직 온기가 남아있어서 이 레이더에 포착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사례는 드물지만 우리나라 생태계에서도 관찰된다고 해요. 실제로 가뭄에 물이 말라 방금 죽은 물고기를 유혈목이 슬금슬금 찾아내 낼름 삼켜버린 사례가 직접 관찰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애완뱀에게 먹이를 줄 때 주식인 냉동 쥐를 그냥 주지 않고 해동시키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괴수의 공생으로 먹잇감이 완벽히 소비되고 주변은 깨끗해지는 이런 상황이 어쩌면 우리나라 계곡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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