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窓] ‘록 없는 록페’인데, 왜 사람 몰리나
지난 주말 수도권 최고기온은 40도. 전국에 폭염 경보가 발령됐고 야외 활동 자제 당부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유독 무색한 곳이 있었다. 사흘간 15만명이 운집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록페)’이었다. 직사광선과 지열과 인파의 열기가 뒤섞여서 입구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지열을 식히기 위해 살수차가 쉼 없이 물을 뿌려댔고, 냉방 텐트와 버스들이 공연장을 에워싸다시피 했다. 냉방 텐트에 들어서는 순간에 솔직히 다시는 나오기 싫었다.
이쯤이면 ‘무더위마저 못 말린 록의 열기’ 같은 문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 풍경은 짐작과는 달랐다. 우선 록의 순도(純度)가 현저히 떨어졌다. 노래방에서 즐겨 불렀던 가수 이상은의 옛 명곡들, 야구장 응원가로 사랑받는 인기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의 최신 히트곡까지 대학가와 한강 공원의 축제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한때 록 팬들을 설레게 했던 해외 대형 록 밴드들의 내한 소식도 뜸해진 지 오래다. 예전의 록페가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같았다면, 요즘 록페는 묽게 탄 아메리카노처럼 밍밍하다.
K팝의 위세에 눌리고 힙합과 전자 댄스 음악(EDM)의 인기에 치여서 흔히 ‘록은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록페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門前成市)다. 이 페스티벌도 재작년 13만명에서 지난해 15만명으로 전체 관객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30대 여성 관객층도 전체의 60~70%에 이른다. 모두 흥행의 청신호들이다. 이쯤이면 알쏭달쏭한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과연 ‘록이 없는 록페’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의 ‘놀이 문화’가 왕년의 ‘록 스피릿’을 대체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기현상은 문화계 전반에서 발견된다. 출판계는 20여 년째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정작 도서전에는 15만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클래식은 낡고 고루하다고 하는데도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의 공연은 불과 몇 초 만에 매진되는 치열한 예매 경쟁이 거듭된다.
언뜻 무관하게 보이는 문화 현상들의 이면에는 숨은 공통점이 있다. 공급자보다는 철저하게 소비자들이 주도하고, 소유보다는 체험 중심이다. 자연스럽게 이벤트와 ‘놀이 문화’의 성격을 지니게 되고, 팬덤과 결합할 때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클릭 몇 번으로 대부분의 음악이나 영화와 접속 가능한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이 장서량과 음반 보유량을 대신하는 문화생활의 척도다. ‘박이부정(博而不精)’이나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소산이라고 혀를 차다가는 대번에 ‘라테(나 때)’와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과도기가 아닌 시절은 없겠지만, 요즘엔 변화의 방향과 속도에 모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어쩌면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쪽은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공급자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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