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1020 돌풍… 올림픽도 디지털 세상도 살길은 오직 하나, 실력이다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기계공학부 교수 2024. 8.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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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만 보고 국가대표 뽑았더니 10대 선수들까지 연이은 금메달
디지털 산업도 앞서 가려면 MZ에 기회 주고 실력으로만 승부해야
공정한 ‘경쟁의 룰’ 만들면 AI 시대에도 한국이 ‘금메달’ 딴다
일러스트=김하경

파리 올림픽에서 감동적인 메달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금메달이 벌써 10개를 넘었다. 우리가 세계 최강의 전투 민족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금메달을 딴 것이 활·총·칼 등 과거 전투에서 쓰던 무기들이라서 그렇다는 얘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대와 20대 초반 선수들의 맹활약이다. 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반효진(2007년생), 오예진(2005년생), 양지인(2003년생) 모두 Z세대다. 오직 실력만으로 선발하는 룰에 따라 당당하게 국가 대표가 됐다.

공정한 선발을 상징하는 종목은 양궁이다. 양궁에서 대한민국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은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도쿄 올림픽 3관왕이었던 안산 선수도 이번 파리 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오직 대표 선발전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 처음에는 말도 많았다. 그런 큰 대회에는 경험 많은 선수를 보내야 한다는 얘기도 많았고, 실제로 국내 선발전과 달리 규모가 큰 대회에서는 신인 선수가 나섰다가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더구나 양궁은 이미 우리가 세계 챔피언이라 쟁쟁한 선수가 많은 분야다. 협회가 이런저런 핑계로 특정 선수를 올림픽에 내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선발된 임시현 선수와 김우진 선수가 ‘파리의 3관왕’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금메달이 목표가 아니라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고집으로 여자 양궁 단체전은 무려 40년간 10번 연속 금메달을 땄다. 어렵다는 남자 단체전도 3연패를 했다. 국민들도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굽히지 않은 ‘오직 실력’이라는 기준에 찬사를 보냈다. 세계 최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올림픽 무대는 혈연·지연·학연이 아닌 오직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다. 세계적인 실력의 선수로 키우려면 우선 ‘공정한 룰’을 만들어주는 게 필수적이다. 그다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양궁협회는 사람 적수가 없자 활 쏘는 로봇까지 만들어 쫄깃한 경쟁을 시키며 훈련을 지원했다. 이러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지원 체계까지 갖춰지니 꿈을 꾸는 청년들이 몰려들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성공을 만드는 삼위일체다.

디지털 신대륙도 올림픽처럼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세계다. 누가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구독과 좋아요’를 만들어내느냐가 승부처다. 이곳에서도 우리나라는 금메달이 즐비하다. 유튜브 단일 영상으로 조회 수 1위는 148억뷰를 기록한 스마트스터디의 아기상어(baby shark)다.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금메달은 오징어 게임이 차지했다. 이후 K드라마의 폭발적인 팬덤을 촉발시켰다.

나스닥에 상장한 네이버웹툰도 웹툰 플랫폼 분야 금메달이다. 이 무대에서 조회 수로 경쟁하는 세계 최고의 웹툰 작가들도 대부분 우리나라 작가다. 금·은·동을 싹쓸이 중이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주간 1위를 기록한 아시아 가수는 BTS가 유일하다. 그것도 무려 8번이나 기록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대 아티스트에 선정되었다고 하니 BTS도 금메달이다. 전 세계 e-스포츠의 황제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다. MZ의 인기로 보자면 손흥민 부럽지 않은 스타다. 실제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디지털 신대륙 라면 분야 금메달은 누가 뭐래도 불닭볶음면이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 일본 닛신 라면이 포장지에 한글을 집어넣었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이들이 성장하는 데 기존의 방송국이나 협회, 정부나 국회가 도와줬다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방해를 안 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플랫폼 기반의 신산업이 성장하면 기존의 생태계는 타격을 받게 되니 방해를 할 만도 하다. 방해의 다른 이름이 바로 신산업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다. 우리나라 플랫폼 기업들은 이제 해외에 본사를 두는 게 상식이 되고 있다. 데이터 관련 규제가 점점 더 조여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 전통의 제조업도 메달리스트가 수두룩하다. 반도체는 누가 뭐래도 세계 3대 강국이다. 이미 일본과 독일을 저만치 제쳤다. 현대·기아차도 판매량 기준으로 도요타, 폴크스바겐에 이어 세계 3위를 2년 연속 기록했다. 자랑스러운 동메달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도 애플 아이폰과 1, 2위를 다투는 중이다. TV와 가전은 미국 시장에서 금메달을 놓고 우리 기업인 삼성과 LG가 다투는 중이다.

조선업도 이미 일본을 제쳤고 중국과 금메달을 놓고 엎치락뒤치락 중이다. 이제는 방위 산업까지도 슬슬 메달권으로 접근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 원전 산업도 이번에 체코에서 메달 하나를 추가했다. 이렇게 다양한 제조 산업에서 메달권에 근접한 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전통의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근간을 받쳐준 덕분에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세계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며 잘 성장해 왔다. 그 어려운 제조업 경쟁에서도 이겨냈고 글로벌 플랫폼에 맞서 독자적 플랫폼 서비스들도 잘 키워왔다. 일찍 개방한 음악, 영화, 드라마는 플랫폼을 타고 심지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모두 기적 같은 일이지만 엄연히 현실이기도 하다.

디지털 문명 시대에 맞춰 규제는 철폐하고 실력으로 평가하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어 줘야 한다. 또한 AI 시대에 걸맞은 과학적인 교육 및 지원 체계를 갖춘다면 우리 MZ 인재들이 디지털 비즈니스 무대에서도 숱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 무대도, 디지털 세상도 기준은 하나, 오직 실력이다. 용기 있게 도전하고 공정한 룰에 따라 성장을 꿈꾸는 청년들을 올림픽을 넘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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