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202] 벌교 짱뚱어 전골
추어탕에서 미꾸리를 찾기 어렵듯 짱뚱어탕도 짱뚱어 형체를 볼 수 없다. 뼈를 발라내고 육수와 시래기를 넣고 끓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믹서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간혹 손님 중에 정말 짱뚱어로 끓이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벌교갯벌에서 나는 짱뚱어로 끓입니다’라고 하지만, 미심쩍어하는 분에게는 짱뚱어 전골을 권한다. 전골은 짱뚱어가 통째로 들어간다. 벌교갯벌에서 볼 수 있는 모습대로다. 또렷한 형체에 기겁해 먹지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국물맛을 보면 달라진다. 탕과 달리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하다.
짱뚱어는 펄갯벌에 서식한다. 미세한 진흙으로 이루어진 갯벌로 벌교갯벌이나 순천만갯벌이 포함된 여자만이 대표적인 서식지이다. 이곳에서 그물이나 낚시를 이용해서 잡는다. 어느 쪽이든 반드시 뻘배를 타야 한다. 모래갯벌과 혼합갯벌은 걸어갈 수 있고, 경운기나 트랙터로 이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펄갯벌은 뻘배를 타지 않고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다. 한 발은 뻘배에 올리고, 다른 발로 갯벌을 밀치면서 스키를 타듯 이동한다. 스키보다 길고 폭이 넓은 나무로 만든 어구다. 그 뻘배 위에서 낚시를 한다. 몇 개의 낚시를 갈고리 모양으로 묶어서 짱뚱어를 낚아채는 ‘홀치기낚시’ 어법이다.
짱뚱어는 아주 예민하다. 새 그림자만 보여도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하물며 사람이 다가가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눈이 툭 튀어나온 것은 갯벌과 하늘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적에 대응하기 위한 적응과 진화의 결과다. 그래서 ‘자산어보’에 짱뚱어를 ‘철목어(凸目魚)’라고 기록했다. 그래도 서식굴 앞에 죽치고 기다리는 왜가리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살살 구멍에서 나오던 짱뚱어가 왜가리 날카로운 부리에 딱 걸렸다. 여자만 옆에 터를 잡고 지내는 나도 전골에 짱뚱어 몇 마리 올리고, 왜가리처럼 만찬을 즐긴다. 기승을 부리는 폭염도 얼마 못 가서 기세가 꺾일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남은 여름을 위해 짱뚱어 전골을 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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