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상속세 완화하려면 생전 불로소득 과세부터 제대로
소득세 못 올리면 자산세 줄이지 말고
종부세 완화하려면 양도세 철저 징수하고
상속세 완화하려면 생전 과세 빈틈없어야
상속세는 이중(二重)과세이기 때문에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살아서 세금 다 냈는데 죽어서 또 낸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생전에 세금을 제대로 낸다면 상속세를 완화해도 된다. 그러나 생전에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가.
개인 세금은 소득세와 자산세로 나눌 수 있다. 소득세는 자영업자는 몰라도 월급쟁이에게는 유리지갑이라고 할 만큼 철저히 징수되고 있다. 다만 세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 국가가 빚을 지지 않고 복지를 강화하려면 세율을 높여야 한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산세 줄일 궁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자산세는 부동산 세금과 금융 세금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로 서울 중위권 아파트 가격이 2017년 5억 원에서 매해 1억 원씩 올라 2022년 10억 원이 됐다. 한 해 소득으로 1억 원씩 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17년 전만 해도 전세를 살다가 집 사는 일이 가능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저금리 탈피가 시작돼 집값이 떨어질 기회가 왔다. 그러나 이 정부는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을 잡아 세웠다. 문 정부에서 강화된 부동산 세금이 효과를 보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오른 집값과 맞물려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집값이 채 내리기도 전에 세금과 대출을 완화하는 바람에 집값은 2022년의 정점으로 돌아갔다.
부동산 세금은 보유세(재산세+종부세)와 거래세(취득세+양도세)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집값 대비 보유세 비율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종부세를 강화한 문 정부 때도 높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1주택자까지 보유세를 부담스럽게 느꼈던 것은 집값이 소득과 큰 괴리를 빚으면서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값이 잘못된 것이다. 윤 정부는 대증(對症)요법적으로 종부세를 완화할 게 아니라 근본 원인인 집값부터 잡으려 노력했어야 한다.
단기간에 집값이 급등한 경우 양도차익은 불로소득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과세 강화가 자연스럽다. 물론 양도세가 높으면 집을 팔려고 하지 않아 매물 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가는 두 마리 다 놓친다. 보유세가 높아서 못 살겠다면 양도세를 낮춰 매도를 유도해야겠지만 보유세를 낮게 유지한다면 높은 양도세는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 보유세는 얼마 내지도 않으면서 크게 늘어난 양도차익은 양도차익대로 누리겠다는 건 고약한 심보다.
집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상속세를 크게 완화하면 사실상 양도세가 사라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자녀 1인당 공제액이 5000만 원에서 5억 원이 된다면 17억 원으로 오른 사람의 아파트가 부인과 자녀 2명에게 상속될 경우 양도세 한 푼 안 내고 팔아서 현금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상속을 하면 상속가액이 취득가액이 되고 양도 차익이 제로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는 두 배로 오른 부동산을 세금 한 푼도 안 내고 물려줄 때 누구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가치가 줄어든 전세금이나 물려주는 양극화의 확대 대물림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자산이라고 하면 대개 부동산 자산이 전부였으나 2000년대 이후로 금융 자산이 급속히 늘고 있다. 부동산은 거주해 살다 보니 값이 오른 것이고 다만 너무 올라 문제가 되고 있지만 금융 투자로 버는 돈이야말로 전형적인 불로소득이다.
이숙연 신임 대법관의 딸은 아버지에게 800만 원을 증여받아 아버지 추천으로 산 주식을 6년 만에 아버지에게 3억8000만 원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와 양도세 약 8000만 원까지 아버지가 내줬다. 딸이 제 돈으로 세금을 냈다고 해도 3억 원이 마법처럼 남는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도 수억 원은 갖고 있어야 할 수 있다. 3억 원을 가진 젊은이가 2017년에 2억 원 대출을 받아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면 지금 10억 원이 돼 있을 것이다. 시작부터 너무 불공정하다면 과세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의 가업(家業) 승계를 지원하는 등의 상속세 완화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는 가구별로 전례 없이 심각하고 광범위한 양극화에 처해 있다. 정책 실패로 오른 집값을 기정사실화해 세제를 맞추지 말고, 집값을 안정화시키고 불로소득에 제대로 과세하고 나서 상속세든 자산세든 완화를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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