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광영]순살아파트 사태 부른 한 뇌물 심사위원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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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설 감리업체들의 금품 로비 사건을 수사한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며 설명 자료에 나온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감리업체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아온 한 심사위원이 아내에게 보낸 카톡 문자였다.
대학 교수인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심사위원단 후보군에 들어 있어 공사 입찰을 하려는 감리업체들의 로비 대상이었다.
평소엔 술이나 골프 접대를 받다가 특정 공사의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심사위원으로 확정되면 업체 쪽에서 돈다발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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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설 감리업체들의 금품 로비 사건을 수사한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며 설명 자료에 나온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감리업체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아온 한 심사위원이 아내에게 보낸 카톡 문자였다. 뒷돈을 받는 게 돈 벌려는 노력이라니… 이어진 부부의 대화는 이랬다.
‘담주 목요일에 심사가 걸렸어요. 선정되면 심사비 외에 약간의?’(남편)
‘좋군~’(아내)
‘(심사위원에) 안 들어가도 상품권도 받고 주유권도 받고… 돈도 주고 어찌 됐던 다 좋아요’(남편)
‘나도 좋네~~’(아내)
아내와의 카톡에 드러난 도덕적 해이
대학 교수인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운영하는 심사위원단 후보군에 들어 있어 공사 입찰을 하려는 감리업체들의 로비 대상이었다. 평소엔 술이나 골프 접대를 받다가 특정 공사의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심사위원으로 확정되면 업체 쪽에서 돈다발을 가져왔다. 뇌물 시세도 형성돼 있었다. 최고점을 주면 3000만 원, 경쟁 업체에 최하점을 주면 2000만 원 정도였다.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 위원 명단이 정해지는데, 그 직후부터 심사 당일 오전까지가 금품 공세의 피크타임이었다. 동시다발적 로비를 받는 일부 심사위원은 업체들끼리 경쟁을 붙여 뇌물 액수를 높이기도 했다.
감리업체들이 이렇게까지 금품 로비를 한 건 돌아가며 한 업체씩 수주할 수 있도록 담합했기 때문이다. 규정대로 경쟁 입찰을 하면 낙찰될지가 불확실하고, 금액도 낮게 써내야 하는데 돌아가며 낙찰을 받으면 가격 경쟁을 할 이유가 없어 비싼 값에 사업을 따낼 수 있다. 관건은 담합이 실현되도록 심사위원들을 매수하는 것이다. 일부 업체가 담합에 응하지 않거나 신규 업체가 입찰에 들어오면 그쪽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도 심사위원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관행은 LH가 나랏돈으로 발주하는 공공사업에서 특히 만연해 있었다. 국민 세금이 낭비될 뿐 모두가 이익을 보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비싸게 낙찰되면 감리업체들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고, 뇌물과 접대비도 거기서 마련했다. 심사위원들은 업체들이 현금을 들고 찾아오니 부수입이 생겼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LH 등은 이런 생태계를 애써 망칠 생각이 없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감리업체 직원 상당수가 LH 퇴직자들이고, 이들은 심사위원들과 근무 인연, 학연 등으로 얽혀 있었다.
‘순살 아파트’ 사태가 벌어진 건 기술력이 아닌 뒷돈으로 감리업체를 선정해 온 결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감리는 설계가 적정한지, 규정대로 시공되는지 검증하는 절차다. 콘크리트를 묽게 만들거나 철근의 개수·간격이 틀렸다면 이를 시정해야 하는 게 감리업체들이다. 철근을 적게 넣어 지하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 사고는 감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었다. 이 아파트 공사의 감리업체도 입찰 담합에 가담했던 곳이다.
돈을 준 쪽이나 받은 쪽 둘 다 문제지만 우리 법은 받은 쪽을 더 무겁게 처벌한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7명 중 6명이 심사위원이다. 각자 받은 돈이 5000만~8000만 원에 이른다. 대부분 교수들이어서 민간인이지만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뇌물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행법상 감리업체 선정 위원들은 심사 기간 동안 공무원으로 간주될 정도로 고도의 공적 책임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일해서 돈 버는 시대 지나’ 자기합리화
서두에 나오는 ‘뇌물 심사위원’은 아내와의 카톡에서 이런 말과 함께 대화를 끝맺는다.
‘이제 일해서 돈버는 시대는 지났어요. (정년까지) 9년 8개월 남았는데 죽어라고 심사하고 돈 벌어야지요~’
죄의식을 찾아보기 힘든 그의 말들은 비리가 일상화된 곳에서 전문가의 직업의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도덕적 불감증의 결합으로 유지되는 불법의 생태계는 비단 건설업계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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