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 “최대 자유 주마, 최고 성과 다오”… 2.7억 가입자 확보 ‘OTT 신화’[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비디오 대여 벌금이 일깨운 창업 본능
헤이스팅스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 ‘아폴로13’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아 40달러를 물어야 했다. 그는 ‘벌금’으로 이익을 챙기는 비즈니스 모델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 DVD를 우편으로 빌리고 반납하는 구독형 DVD 우편 렌털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1997년 창업했다. 창업 초기엔 위기를 겪었다. 넷플릭스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터지며 고전했다. 헤이스팅스는 당시 비디오 대여업계 1위였던 블록버스터를 찾아가 “5000만 달러에 넷플릭스를 인수해 달라”고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 거절이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규칙없는 문화로 유연한 조직 만들어
넷플릭스는 2013년 고객의 구독 정보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투자하고 제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시작했다. 첫 작품이 미 백악관의 권력 암투를 생생하게 묘사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House of Cards)’ 시리즈다. 넷플릭스는 이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콘텐츠 유통회사에서 투자, 제작 기업으로 변신하고 디즈니 등과 같은 콘텐츠 제공자들과 직접 경쟁하게 된다. 2024년 현재 넷플릭스 시장가치는 2720억 달러로 100년 역사의 미국 대표 콘텐츠 기업인 디즈니(1740억 달러)보다 높다.
넷플릭스의 눈부신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성공에는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경영학자들은 특히 넷플릭스의 특이한 기업 문화를 주목한다. 헤이스팅스는 처음 창업한 회사인 퓨어소프트웨어가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의사결정이 규칙에 좌우되는 관료화라고 생각했다. 규칙에 따라 직원들을 규제할수록 조직의 유연함이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혁신이 감소했다. 그는 가장 창의성이 필요한 콘텐츠 관련 사업을 창업하면서 새로운 조직에서만큼은 혁신을 기업의 가장 큰 가치로 삼았다.
헤이스팅스는 혁신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분산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소수의 임원들이 모든 결정을 내리다 보면 다양성이 제한되고 유연성도 떨어진다. 헤이스팅스는 “일반적으로 상사는 직원의 결정을 승인해 주거나 거부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혁신을 막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는 분산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먼저 기업 내 규칙을 최소화했다. 모든 의사결정은 ‘넷플릭스에 가장 이득이 되게 행동하라’는 단순 원칙에 맞게 자율적으로 행동하라고 권한다. 심지어 휴가 규정도 없앴다. 임직원들이 업무를 책임지는 한에서 마음껏 휴가를 갈 수 있게 했다. 모든 일을 규칙에 따라서 해야 한다면 직원들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직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여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첫째, 넷플릭스는 최고 수준의 보상을 통해 업계에서 가장 유능한 임직원을 뽑았다. 최고의 인재들이 내리는 결정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결정을 관리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평범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적절한 보상 패키지와 함께 회사에서 내보낸다. 최고의 직원들에게 권한을 주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들었다. 뛰어난 인재들은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주어질 때 가장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재-조직 최적 매칭, 한국선 어려워
한국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조직이 탄생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직원들을 기업 규칙으로 관리한다. 직원들은 규정되어 있는 일만 하게 되고 규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업무가 주어진다면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도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규칙을 우선하는 한국 조직만을 탓할 수는 없다. 직원들의 해고가 미국에 비해서 훨씬 어렵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책임을 지게 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조직 입장에서는 최대한 정해진 규칙을 정하고 직원들이 그 규칙에 따라서 일정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이 같은 해고의 어려움은 인재의 유동성을 떨어트려 최적화된 인재 배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짧은 면접으로 기업에 최적화된 인재를 가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사와 맞지 않는 인재가 들어왔을 때 내보낼 수 없다면 회사의 경쟁력은 낮아진다. 기업들은 잘못된 인재를 뽑는 것을 두려워하여 신규 고용도 줄이게 된다.
미국처럼 마냥 해고를 쉽게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그 역시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 일자리 시장은 인재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기업과 인재의 최적 매칭이 일어난다. 반면, 현재 한국의 인재 시장은 쉽게 해고된 사람들이 쉽게 다시 취직하기가 힘들다. 해고를 쉽게 하면 일방적 노동력 착취가 일어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한국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내야 할 문제다. 이 고차방정식을 지혜롭게 풀 수 있는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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