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대상 되고도 7개월간 몰랐다”…검찰 편의에 맞춘 무차별 통신조회
"공문만 보내면 무차별 제공, 바뀌어야…폐기 규정도 필요"
"당사자에 7개월 늑장 통보…총선 의식했나"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검찰이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3000여 명에 이르는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 기자 등의 통신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밝혀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적법 절차에 따른 수사과정이라고 주장하는 검찰이 통신조회 대상 규모와 정확한 기준을 밝히지 않고 있어 논란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올해 1월4일에 실시한 통신조회를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대상자들에게 통보한 것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6일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검찰이 확보한 통신조회 대상의 인적사항에는 성명, 주민번호, 주소, 통신사 가입일 등이 포함돼 있다. 조회 대상 규모는 3000여 명이라고 알려졌는데, 검찰은 통신조회 대상자의 정확한 인원수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느 피의자의 통화목록을 확보하고자 통신조회를 하게 됐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내용에 포함된 사실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통신조회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가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지난 대선 당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윤석열 후보가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허위사실을 담은 인터뷰를 하면서 윤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주민번호와 주소 등 인적사항이 포함된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파헤친 것이다.
수사기관이 확보하는 통신관련 자료는 크게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로 나뉜다. 예를 들어 피의자가 누군가와 공모한 사실을 밝혀내고자 할 때 검찰은 기간을 확정하고 이 기간 통신내역을 확보한다. 통신 내역에는 '010-2000-3000' 등 상대 전화번호만 확인이 되는데, 검찰은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통신사에 공문만 보내 해당 번호들의 인적사항을 요청할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통신조회가 바로 이 자료다.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법원의 영장 발부가 있어야만 확보할 수 있으며 누구와 언제, 몇 분동안 통화를 했는지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野 "이재명 등 139명 통신사찰"…與 "3년 전엔 적법 주장"
통신조회가 적법수사냐 정치사찰이냐를 두고 여야는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 여부에 대한 의원실 전수조사를 마치고 당 차원의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1차 취합 결과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와 추미애 의원(전 법무부장관) 등 139명이 통신사찰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22대 국회 현역의원 19명이 포함됐다.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검찰은 가입자 정보만 조회했다고 하지만, 통화 내역과 연결되면 누가 누구랑 통화하고 언제 통화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생성되기 때문에 대규모 사찰 정보가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적법한 수사 절차"라며 반박하고 있다. 이날 장동혁 최고위원은 2021년 공수처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부와 소속 의원 89명에 대해 통신 자료를 조회했던 점을 거론하며 "그때 민주당 여러 의원이 '정치 사찰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적법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관련자 숫자를 보면 그때보다는 훨씬 범위가 좁다"고 지적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본인과 김건희 여사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자 "미친 사람들 아니냐"라며 분노한 바 있다.
통신조회 통보를 받은 이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대상에는 본지 기자까지 포함돼 있다. 검찰이 언제든 정치인의 인적 네트워크와 기자의 취재원을 파악할 수 있다면, 정치인들이 활동에 제약을 받거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여지가 크다. 수사를 목적으로 한 번 데이터화된 자료를 언제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어 당사자들은 영구 보관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안아야 한다.
통신자료가 압수수색 영장 없이 이뤄지는 문제를 이제라도 공론화해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장 최고위원은 통신자료 조회가 압수수색 영장 없이 이뤄진 데 대해 "법원을 거치지 않고 하는 것에 대해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통신자료 조회 대상에) 언론인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범위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한번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고도 말했다.
"무차별 정보제공에 제동장치 필요…기록 남지 않도록 폐기해야"
검사 출신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 번호와 통화한 모든 대상을 다 확인해주는 정보통신망법은 바뀌어야 한다"면서 "어느 정도 혐의가 소명된 경우에 한정해서 통신자료를 제공하는 등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신사에 공문을 보내기만 하면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수사절차가 옳은지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 전 의원은 또 "(확보된 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되거나 기록으로 남지 않도록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하는 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사 편의에 맞춘 무차별 통신 조회도 문제지만 검찰이 그 사실을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당사자들에게 알린 배경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조회가 이뤄진 지난 1월이 총선을 불과 3개월 여 앞둔 시점어서 이 같은 논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봐 통보를 늦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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