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대안으로 각광 ‘마을기업’, 정부 예산 삭감에 난감
전국 1800곳 연매출 3090억에 1만4819개 정규직 일자리 창출
법·제도 미비로 성장에 한계…22대 국회 ‘지원법’ 제정 촉구
지난달 27일 저녁 찾은 전남 목포시 해안로 건해산물 거리. 여름철 토요일마다 열리는 ‘토야호’(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뜻) 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는 마을기업 ‘건맥1897협동조합’이 연다. 조합은 2020년 옛 여관 건물을 개조해 183명의 지역 주민이 함께 소유하는 전국 최초의 마을펍과 마을스테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맛난 음식에 반해 외지에서 단골고객이 찾아오고, 도매로 건어물을 팔던 상인들은 이들을 위한 소포장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올해의 우수 마을기업’에 뽑히는 경사도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 무릉2리의 농부 55명은 2009년부터 제철 농산물 정기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평균 320만원씩 출자해 2011년 마을기업인 ‘무릉외갓집’을 설립했다. 감귤잼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과 농산물 판매를 할 수 있는 복합 공간도 운영한다.
매년 7억원 이상 마을 농산물을 매입하는데, 기존 유통망보다 10% 정도 높은 값을 준다. 제값 받고 농산물을 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주민에게 주는 인건비는 최근 5년간 1억5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모두애마을기업’에 선정된 후 서귀포시 마을기업 3곳과 함께 농산물 가공·유통을 위한 플랫폼 구축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마을기업은 지역 주민이 일자리 창출, 지역 문제 해결, 생활환경 개선 등을 목적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수익사업을 하는 마을 단위 사업체를 뜻한다. 한국마을기업중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800개 마을기업이 연간 3090억원의 매출과 1만4819명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마을기업은 창업 후 5년차 생존율이 지난해 말 기준 89.3%에 달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밝힌 국내 창업기업의 5년차 생존율이 33.8%인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높다.
정우영 건맥1897협동조합 이사는 “주민의 필요로 자생적으로 만든 마을기업이라 잘 버티고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순일 무릉외갓집 실장은 “자식과 손주까지 돌볼 수 있는 100년 마을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 포천의 장독대마을은 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 주민들이 정착해 만든 마을이다. 주민들은 뽕나무를 주작물로 삼고 2012년 마을기업을 세워 뽕잎국수, 오디잼·와플 등을 만들어 팔고,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주민이 80여명인 마을에 매년 1만명 넘게 찾아온다. 청년 귀촌으로 초등학생이 5명이나 있다. 손익분기점을 넘은 2017년부터 매년 60만원씩 70세 이상 마을 어르신에게 연금을 드리고, 마을 초·중·고생에게 30만~50만원씩 장학금도 준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근거법이 없어 성장과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마을기업은 행안부의 ‘마을기업 육성사업 시행지침’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수인 장독대마을 대표는 “생활인구를 늘릴 수 있는 마을기업 사업은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7억원이던 마을기업 예산은 올해 27억원으로 크게 깎였다. 행안부는 신규 지정을 중단하고 기존 마을기업 고도화만 진행하고 있다. 신일철 행안부 기업협력지원과장은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지만 예산 협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마을기업지원법 제정을 기대하고 있다. 19대 국회부터 매번 발의되고 있으나 통과되지 않고 있다. 22대 국회에선 한병도·박정 의원 등 야당을 중심으로 두 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5년 단위 종합계획·연도별 시행계획의 수립·시행, 국세·지방세 감면 등 지원에 관한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방태형 마을기업중앙협회 이사는 “근거법이 없다 보니 예산도 일률적이지 않고, 체계적인 육성 관리가 안 돼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라면서 “공동체 회복이라는 마을기업의 가장 큰 장점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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