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기차 화재, 왜 피해 커졌나…당시 스프링클러 작동 안해

스프링클러 작동한 군산 전기차 화재는 45분 만에 진화

지난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전날 오전 6시 15분쯤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화재가 발생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 40여대가 불에 탔고, 100여대가 열손 및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인천=연합뉴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현장이 찍힌 CCTV를 보면 차량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불길이 퍼진 상황에서 소방용 설비를 통한 초기 진화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규모를 키웠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6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쯤 서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에 불이 붙었지만,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은 현장 CCTV와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발화 지점을 중심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화재 직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정확한 미작동 원인에 대해선 추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스프링클러는 전기차 화재 발생 시 불을 완전히 끄지는 못하더라도 불길이 확산하거나 주변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8일 오후 7시 24분 전북 군산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차된 쉐보레 볼트EV 차량에 불이 났을 당시엔 스프링클러가 작동, 45분 만에 꺼졌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당시 소방 당국이 촬영한 영상에는 주차장 천장 쪽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끊임없이 물이 분사되는 모습이 담겼다.

반면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된 인천 전기차 화재의 경우 차량 140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연기 흡입 등으로 2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주차장 내부 온도가 1000도 넘게 치솟으면서 지하 설비와 배관 등이 녹아 정전과 단수가 발생하는 등 국내 전기차 화재 중 최대 규모의 피해로 이어졌다.

인천과 군산의 전기차 화재 모두 소방장비 투입이 제한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데다, 다량의 연기 분출로 현장 접근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리튬배터리를 제외한 부품들은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로 어느 정도 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벽 시간대 도심 대단지 아파트 주차장에 차량이 밀집한 상황에서 불이 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화재 현장 CCTV 영상과 사진에는 발화점인 벤츠 전기차 주변으로 차량이 빼곡히 주차된 장면이 담겨 있다.

전기차 특성상 배터리팩에 불이 나면 화염 방향이 위로 치솟는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수평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차체 밑부분에 깔려 있다 보니 불길이 옆으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며 "화재 직후 유독가스까지 퍼져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재 발화점으로 지목된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EQE 세단으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 에너지'의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해당 전기차에서 배터리팩 등 주요 부품을 분리하는 작업을 거쳐 정밀 분석을 실시할 계획이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