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칼럼]대통령다움, 그 무거움에 대하여

이기수 기자 2024. 8. 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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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다섯 달 뒤다. 2022년 10월,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검사 곤조(근성)를 빼야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된다.” DJ 저격수로 정치를 시작한 그도 그걸 빼는 데 국회의원 3선, 8년이 걸렸다고 했다. 상대 약점만 좇고, 물면 놓지 않고, 한번 당하면 잊지 않고 되갚아주고, 사과를 모르고, 선악으로만 보는 정치를 ‘검사의 곤조’라 했을 게다. 당시 법무장관 한동훈을 겨눴겠지 싶으나, 2년이 흘러 ‘검찰국가’와 ‘검사 대통령’을 반추해도 정곡을 찌른다.

세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승자독식 없다”며 국민통합 화두를 던진 집권 초, “국민은 늘 옳다”며 여당에 교훈을 찾으라 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한 4·10 총선 참패가 그것이다. 그 후는 본 대로다. 쇄신을 삼세번 약속하고,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권 27개월, 국정 최고지도자의 ‘존재 이유’를 잊고, ‘대통령다움’을 뭉갠 네 장면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 1년 전 광복절, 대통령은 이념을 “국가 지향점”으로 삼았다. 국정교과서를 고쳐 쓰려 한 ‘보수의 화신’ 박근혜도 하지 않은 말이다. 하루아침에, 야당과 비판언론이 반국가 세력으로 옭아매졌고, 홍범도 동상을 겨눈 그 광풍은 10월 강서구청장 선거 후 잦아들었다. 해서, ‘이념 대통령’이 멈췄는가. 모두 고개를 젓는다. 그제 성인 92%가 ‘진보·보수 갈등’을 심각히 본 국책연구기관 보고서가 나왔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58%가 결혼·연애를, 33%가 술자리를 거부했다. 국회·TV토론서 갈린 이념과 정치가 선남선녀 삶에 깃들어버렸다.

#검찰국가에 핀 뉴라이트 꽃 = 첫 조각 때 대통령이 꺼낸 책임장관제는 바로 헝클어졌다. ‘5세 취학’과 ‘주 69시간 노동’을 대통령이 툭 던지고 거두어들인 뒤다. 책임장관제는 이태원 참사 후 ‘이상민 행안부’와 잼버리 참사 후 ‘김현숙 여가부’의 엇갈린 생사로 원칙이 무너졌고, ‘방송장악 소모품’으로 이동관·김홍일·이진숙이 이어달린 2인 방통위에서 마지막 종을 쳤다. 사람이 말라 ‘극우·반노동’ 김문수를 노동장관에 지명했나 싶더니, 통일부·국가교육위·진실화해위·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뻗은 뉴라이트가 독립기념관까지 노리고 있단다. 대통령 입에 왜 ‘공산전체주의’가 오르고, 사도광산 외교 참사는 우연이겠나. 총리·국무위원 나이 평균 62.5세. 검찰 기둥 위에 뉴라이트 꽃이 핀 윤석열 인사, 좁고 늙고 낡았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 = 2022년 3월, 대통령의 당선 인사는 호기로웠다. 하나, 대통령은 ‘그의 격노’ 후 180도 바뀐 채 해병 순직 사건에 아직 사과·설명이 없다. 때늦게, 검찰의 출장·특혜 조사를 받은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을 돌려주라 했었다”고 아래로 책임을 미뤘다. 그런 여파일 게다. 지시받고 결재할 때, 비망록·상황일지 적는다는 공직자를 곧잘 본다. 채 상병 수사에 씌운 항명죄는 말할 것 없고, 아래만 처벌한 이태원·오송 참사 뒤로 몸을 사린다니, 그저 끄덕일 뿐이다.

#“국정 운영의 중심은 의회다” = 대통령이 취임 엿새 후 국회를 찾아 이런 말을 했었다. 입발림으로 끝난, 먼 과거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줄 잇더니, 입법과 정치가 다 서버렸다. 대통령이 여당에 거부권을 활용하라 한 것부터, 국회 의석과 입법권을 깡그리 무력화한 것부터 ‘행정독재’ 시비를 지핀다. 여야를 중재하고 국정·민생 출구를 뚫어야 할 국정지도자의 품새는 더더욱 아니다. 그의 총평이 될 첫 용산시대가 민주주의 교과서를 벗어나 있다.

그 업보다. ‘윤석열들’은 이제 여당 전대서도 밀린 소수파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분열의 언어를 쓰고, 우극단 인사를 하고, 부자감세만 골몰한다. 집토끼부터 좇는 위기감의 발로다. 흙수저 2030도 ‘집권기반’으로 품더니, 그들마저 자산 격차를 키워 ‘통치기반’에서 밀어냈다는 우석훈의 글이 날카롭다.

대통령 부부가 여름휴가를 떠났다. 고생했단 말은 작고 박하다. 딱 부러지게 뭘 했다 꼽을 게 없고, V1도 V2도 의혹투성이고, 큰 선거는 다 졌으니, 누굴 탓할 텐가. 대통령의 정치는 말과 인사로 한다. 그 말이 무게를 잃고, 인사는 길을 잃었다. 겸손하고 정직하고 협치하는 권력만이 국정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헛것이 된 대통령다움을 누가 바로잡고, 끈 풀린 인치(人治)를 누가 세울 수 있을까. 국민밖에 없다. 더 늦기 전, 임기 반환점 앞에, 대통령 부부가 답하고 결단하고 고개 숙일 게 한둘인가. 경구 열두 자가 스친다. “그때였음을, 늘 지나고서 안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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