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감세 정부, 증세할 수밖에 없는 정부
더운 여름에 발표되는 중요한 정책 중 하나인 세법개정안은 지난 7월25일에 발표되었다. 8월 말에 발표될 내년 예산안과 함께 이들은 가을 내내 국회의 심의를 거쳐 12월 말에 의결된다. 세법개정안은 가계와 기업 등 국민들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살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세 번의 세법개정안은 그 정도와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감세정책이 특징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에 따르면 2022년의 세법개정안으로 2027년까지 총 64조4000억원이, 2023년의 세법개정안으로 2028년까지 총 4조8000억원이, 그리고 2024년 세법개정안으로 2029년까지 총 18조4000억원이 감세될 것이다. 특히 올해 세법개정안의 주요한 골자는 상속증여세 인하로, 그 규모가 전체 감세규모 대부분을 차지하는 18조6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간 금기시해왔던 상속세 최고세율 구간을 10%포인트(50%→40%) 줄여 이른바 부자감세라고 비판받으면서까지 과감하게 했다.
내년 이후부터는 감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3년 동안 시행된 세법개정으로 총 감세규모가 76조원 정도가 될 것이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감세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부의 경우 재임 기간 감세규모가 45조8000억원에 불과한 것을 보면 이번 정부의 감세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남은 재임기간 동안 증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수지 적자가 한 해 GDP의 4%인 100조원 정도를 보이는 현실에서 세입기반을 튼튼히 하고 증세를 통해 적자규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도 부족한데 또 감세라니 도대체 어떤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대 재정학에서도 원용되고 있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에서 정립된 조세부과의 원칙은 응능(應能)원칙(소득비례성의 원칙), 확정성의 원칙, 납부편의성의 원칙, 그리고 효율성의 원칙 등이다. 올해 단행된 세법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상속세 인하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첫 번째 원칙인 응능원칙 즉, 각 개인이 가진 능력(수입)에 비례하여 조세를 부담하는 개념인데 이를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내년 1월1일에 시행하기로 이미 2년 전에 공표된 금융투자세의 폐지 또한 확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도 볼 수 있다. 설사 이들 원칙들이 최대한 지켜졌다고 하더라도 세법개정 전후의 전체 조세수입은 크게 변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세수중립성의 원칙은 크게 어긋난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경기침체 지속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국세수입을 고려하면 이러한 감세정책은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작년 56조원의 세입결손과 올해도 예상되는 세입결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3년 연속 감세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권이 몇번 바뀌었다. 감세하는 정부가 있으면 그 뒤로는 반드시 증세할 수밖에 없는 정부가 나타난다. 왜냐하면 정권을 잡은 후 텅 빈 나라 곳간을 보면 이를 채워놓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 이후 박근혜 정부는 재임기간 중 총 18조원 정도를 세입기반 확충과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증세하였다. 물론 증세를 저소득층에서 주로 하여 형평성의 측면에서 비판받을 소지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증세정책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 대규모의 초과세수를 가져다줘 문재인 정부 정책을 실현하는 실탄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문재인 정부는 압도적인 입법부 권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입기반을 번듯하게 확충하는 데 실패했다. 진보정부가 갖는 증세 트라우마에 갇혀 제대로 된 조세개혁을 하지 못하고 재임기간 내 겨우 1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입증대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근 20여년 동안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 내외에서 소폭으로 늘었다 줄었다 할 뿐이었다. 그사이 저출생·인구구조 고령화는 쏜살같이 진행되어 내년부터 초고령사회로 들어가게 되었다. 고령화 비율 1% 증가할 때마다 늘어나는 복지지출은 대략 GDP의 1%인 25조원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의 조세부담률은 여전히 답보상태이다.
2022년 등장한 윤석열 정부는 3년 연속 큰 폭의 감세정책을 펴고 있다. 과거 개발시대의 조세재정 당국은 나라살림의 금고지기로 그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지금의 조세정책은 그 명성과 자부심에 금이 갈 정도로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나라 곳간을 채우는 일에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세자 천하지대본(稅者 天下之大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보를 지향하든 보수를 지향하든 말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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