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뉴 노멀’이 된 탄핵 정치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뒤집어 놓은 이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긋지긋하지만 우리의 감각이 무뎌져 이제는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전쟁터로 변하였다.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는 두 가지 공간이 특히 두드러진다. 하나는 포퓰리즘 물결과 함께 폭력적인 투쟁의 장소가 된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을 감정적으로 선동하는 프로파간다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성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논의는커녕 적대적 혐오와 원한 감정을 강화하는 증폭기일 뿐이어서 투쟁으로 전락하고 타락한 정치는 사회 전체를 폭력적인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우리 정치가 폭력적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을 과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정치 현장을 뒤덮고 있는 정치적 수사가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암살 시도가 보여준 것처럼 정치적 양극화는 언제든지 정치적 폭력과 시민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가 선동한 폭력적인 반란은 미국 민주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이번 총격 사건이 미국의 정치문화를 이성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정치문화를 폭력적으로 만든 극단적 양극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안도의 한숨은 결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명제에서 ‘다른 수단’은 총이 아닌 말이기 때문에 전쟁의 과정과 결과가 결코 폭력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자기기만이다. 폭력의 잠재력이 증폭되면 어디에선가 터지게 마련이며, 그 결과는 사회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를 폭력적인 전쟁으로 만드는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상대방을 ‘경쟁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정치집단은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반민주세력으로 급진화한다. 그 결과는 반복되는 헌법적 위기, 고조되는 정치적 폭력, 그리고 포퓰리즘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통치일 것이다.
뉴 노멀은 위기를 정상으로 오도
이런 상황에서는 합법적 선거를 통해 교체된 어느 정권도 안정적으로 통치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장기적 정권 불안정은 이제 ‘뉴 노멀’이 된 것이다. 뉴 노멀은 정치, 경제, 사회 등이 위기를 겪은 이후 정착하는 상태로서 위기가 시작되기 전의 정상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치적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화문 촛불 시위를 통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통합할 줄 알았다. 그 기대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사회 분열로 산산조각이 났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화되고 소셜미디어의 디지털 공간이 혐오와 갈등으로 부패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은 정말 역설적이다. 진영화된 적대적 대립 구도를 통해 탄생한 윤석열 정권에 대화와 협치를 바라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은 망상이지만, 국민은 다시 한 번 희망을 걸었고 거듭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 전 정권을 침몰시켰던 독선과 불통은 여소야대의 기이한 체제를 공고하게 해 정권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0.73%의 초박빙으로 불안정하게 정권을 잡았음에도 협치보다는 대결을 선택하였던 것처럼, 국민의 45%가 국민의힘을 뽑았지만 왜곡된 선거제도로 입법권을 장악한 더불어민주당도 극단적 대결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정권 불안정과 헌법적 위기라는 ‘뉴 노멀’을 경험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 전환과 함께 새로운 정상으로 정착한 뉴 노멀은 위기를 정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정치적 행위의 합법성을 강조할수록 합리적 논의와 타협을 거부하는 모순이 반복된다. 정권과 여당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당내의 강경파를 선호하고 선동하는 야당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윤석열 정권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민주적 게임 규칙에 대한 약속을 포기하는 이러한 경향은 총선 승리로 더욱 증폭되고 강화되었다. 여기서 비폭력을 가장한 정치의 다른 수단은 바로 ‘탄핵 정치’다. 정치가 어지러웠던 시절에도 쉽게 입에 올리길 꺼렸던 ‘탄핵’이라는 낱말이 너무 쉽게 거론된다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탄핵 정치는 이제 ‘뉴 노멀’이 되었다.
제2의 촛불 꿈은 정권욕의 망상
탄핵은 일반적인 절차에 따른 파면이 곤란하거나 검찰 기관에 의한 소추가 사실상 어려운 대통령 등 고위공무원을 국회에서 소추하여 파면하거나 처벌하는 행위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중대해야 한다. 탄핵 사유가 명료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 까닭은 그만큼 중대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이 못마땅해도 탄핵당할 정도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권력자를 신속하게 제거하여 정권을 붕괴시키거나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합법적인 방법이 탄핵이기 때문이다. 적을 제거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라면, 탄핵은 정권 종식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공화당이 국가 기관을 정치화한 것처럼, 더불어민주당은 과반수의 국회 권력으로 모든 정치적 행위를 사법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한 수원지검 부장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되자마자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다. 중대한 범법 행위가 없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탄핵을 남발하면, 그것은 명분과 과정과 절차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적을 제거하려는 의도만을 적나라하게 폭로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탄핵 정치의 뉴 노멀이 민주 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헌법 질서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권 쟁취라는 목적만 생각하고 과정과 수단의 정당성을 묻지 않으면, 정치는 점점 더 극단화하고 폭력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온 “지금 시대정신은 탄핵”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말은 탈권위주의라는 시대정신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정권 획득의 가능성도 줄인다. 오만한 권력은 결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21대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권을 제대로 견제하라는 요구였지, 결코 윤석열 정권의 임기를 조기 종식하고 조기 대선을 실시하라는 명령은 아니었다.
뉴 노멀의 탄핵 정치는 정권과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탄핵을 정치적 전쟁의 수단으로 삼는 더불어민주당에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우리 정치는 더욱 양극화됨으로써 탄핵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의심과 저항이 커졌다. 탄핵의 의도가 헌법질서의 복원이 아니라 정적의 제거라는 것이 분명해질수록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제2의 광화문 촛불 시위를 꿈꾸는 것은 권력욕에 어두운 사람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둘째는 정치를 사법화하고 사법부를 정치화하면 할수록 정치 행위는 더욱더 법률의 형식적 틀에 묶이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외칠수록, 이재명 전 대표를 비롯해 위법행위를 한 정치인들의 사법적 리스크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탄핵을 단지 정권을 흔들기 위한 선동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더욱 강렬하고 폭력적인 프로파간다에 의존하게 된다. 명분이 없으면 표현이라도 강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극단화는 수권 정당으로서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설령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다고 해도 정치적 전쟁의 노선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의 독재정치로 회귀하지는 않겠지만 고질적인 정권 불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권 불안정이라는 뉴 노멀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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