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받지 못한 역사… 잊지 않고 되새기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
日 방적공장서 착취당한 조선 소녀들
긍정·승리 관점서 여공들의 삶 그려
‘1923 간토대학살’
유언비어 퍼트려 무고한 조선인 학살
당시 보도·사진·증언 등 토대 진실 추적
“조선인 여공이 사람이라면, 나비나 잠자리는 새라고 해야겠지.” 192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방적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여공들은 이런 멸시를 받았다. 일본인들은 10∼20대 조선 여공들을 ‘돼지 여공’ ‘조선인 돼지’라 불렀다. 이 소녀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영화는 1910∼1950년대 일본 오사카 지역 방적공장에서 일한 신남숙(99), 김순자, 김상남(98)씨 등의 증언과 기존 연구들을 토대로 제작됐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찬정이 1983년 일본에서 출간한 책 ‘조선인 여공의 노래’도 참고했다.
조선인 여공은 주로 10대였다. 신남숙씨는 12살에 공장에 취업했다. 김상남씨는 11살인데 13살로 속이고 일했다. 당시 한복 차림의 단체 사진을 보면 여공들의 얼굴은 초등학생처럼 말갛고 앳되기 그지없다. 영화를 만든 이원식 감독은 “조선인 여공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갔지만, 모집인에 속아서 갔다”며 “일본의 침략에 의해 조선 경제는 처참하게 무너졌지만, 상대적으로 일본은 방적 공장과 군수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다”고 설명했다.
방적 공장은 2교대였다.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일하면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았다. 깜빡 졸다 눈을 뜨니 팔이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살점이 다 떨어진 소녀도 있었다. 아파서 기절했지만 감독관은 “이 새끼, 조니까 다치는 거야”라고 말했다.
번 돈은 최소한만 남기고 가족에게 송금했다. 늘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여공들은 일본인들이 ‘호루몬’(오사카 사투리로 쓰레기라는 뜻)이라며 버리던 육류의 내장을 얻어와 구워 먹었다. 한 여공은 생선을 사려 하자 “조선 돼지에게 이런 건 사치야”라며 거절당하고 3∼4일 된 썩은 생선을 권유받았다.
방적공장은 ‘빨간벽돌 감옥’이라 비유됐다. 담장 위에는 도망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있었고, 허가서에 몇 개의 도장을 찍어야 겨우 나갈 수 있었다. 부모가 돌아가셨다 말해도 내보내주지 않았다.
감독관은 이들을 두드려 팼다. 조선인 감독관도 상부에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똑같이 때렸다. 조선인 남성들로 구성된 상애회라는 친일단체도 이들을 착취했다. 오사카 상애회는 악질 중의 악질로 전해진다. 이들은 여공의 급여에서 수수료를 가로챘다. 여공들을 무작정 불러내서는 돈을 낸 조선 남성과 바로 결혼시켰다. 성적 착취도 있었다. 일부 여공들은 열악한 환경과 폭력 속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김상남씨는 “일본 사람들이요 나한테 쪼메 띡띡거려 보이소. 내가 가만있는가. 절대로 안 졌지”라며 “조선 어쩌고 하면 바로 가서 무슨 소리야 하고 따지니까 일본 사람들이 무서워했어”라고 말한다.
이들은 배우고 저항했다. 글을 몰라 어머니에게 직접 편지조차 쓰지 못했기에, 야학을 열어 한글을 공부했다. 근로환경 개선과 부당해고 철회를 위해 쟁의에도 나섰다. 일본 경찰과 폭력단의 과잉진압으로 쟁의는 실패했지만 “그녀들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승자처럼 당당했다”고 영화는 전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한국과 일본에서 수집한 사진과 영상, 공식 문서, 당시 외국 언론 보도, 유가족을 포함한 개인의 증언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학살의 진실을 추적한다.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등 오랜 시간 간토대학살을 추적해온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도 담았다.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1993)과 ‘세계영화기행’(1995)으로 상을 휩쓰는 등 20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태영 감독, 방송 경력 20년의 최규석 감독이 함께 연출했다. 배우 김의성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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