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집게손’ 온라인 괴롭힘 불송치에…“국가가 인권침해 묵인”

최윤아 기자 2024. 8. 6. 1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 ‘피해자 고소 각하’ 비판 커져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 남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특정 손가락 모양을 넣었다고 잘못 지목된 애니메이터 ㄱ씨가 자신의 에스엔에스 등에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받은 메시지. ㄱ씨 제공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에 ‘집게손가락’을 그린 이로 잘못 지목돼 성적 모욕과 신상 공개 등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 애니메이터가 가해자들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자, 경찰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수년간 남성 이용자가 다수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영상물이나 포스터 속 집게 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며 관련 기업 등에 집단 항의를 이어왔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협받거나 무차별적인 괴롭힘 피해를 겪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위험에 처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국가 공권력이 외려 심각한 인권침해를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 애니메니터 ㄱ씨의 법률대리인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에 따르면, 피해자는 자신을 향한 약 3500건의 온라인 게시물 및 메시지 가운데 그 정도가 심한 308건에 대해 지난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모욕·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서울서초경찰서는 일부 고소 건(네이트판·트위터 41건)에 대해 지난 7월 24일 불송치(각하) 결정을 하며 “고소인이 (사건) 이전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트위터 글을 게시한 사실이 있으며 피의자들의 행위는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다소 무례하고 조롱섞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앞서 ㄱ씨는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 ‘집게손’을 그린 이로 지목돼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 등으로부터 신상 공개·성적 모욕 등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으나 이후 해당 장면을 그린 당사자가 아님이 밝혀졌다. 피해자는 무차별 괴롭힘으로 인해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 능력 저하, 식욕 저하, 수면 장애 등에 시달려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

한민경 경찰대(행정학) 교수는 이날 한겨레에 “담당 수사관은 과거 페미니스트에 동조하는 듯한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고소인에 대한 모욕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나 페미니스트이거나 페미니스트에 동조한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모욕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경찰이 피해자를 향한 온라인상 폭력을 “다소 무례하고 조롱섞인 표현”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혐오 표현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일선 경찰은 “디엠(DM)으로 피해자를 타깃해 모욕적 발언을 하고, 온라인에서 실명을 거론한 행위를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데 대해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며 “더구나 과거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글을 게시했다며 피해자에게 폭력 발생 원인을 돌리는 2차 가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논평을 통해 “300여건의 신상공개, 살해 협박, 성적 모욕을 당한 국민이 국가에 정당한 처벌과 보호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논평을 내어 “집게손가락 작업자로 잘못 지목돼 겪은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건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경찰의 기본을 저버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묵인하겠다는 반인권 행태”라며 “짧은 머리 여성에 대한 공격 등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어 실질적 위협이 된 지 오래됐으나 그간 경찰은 부실한 피해자 보호로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등이 모인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 출범식이 지난 3월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경찰 수사가 무성의했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서초서는 지난 6월 고소장을 접수한 뒤 피해자 조사를 한 차례 진행했을 뿐 트위터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거나 피고소인을 특정해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경찰은 수사결과 통지서에서 “피의자(불상)의 고소인에 대한 통신매체이용음란 관련 혐의는 상당하다”면서도 “트위터는 강력범죄에 한해 자료제공 요청에 응하고 있어 수사 계속이 실익이 없다”고 했다. 범유경 변호사는 “트위터가 강력범죄 이외 자료 요청에 잘 응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자료 요청을 하는 수사관도 있는데 서초서는 시도조차 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도 “‘혐의는 있으나 수사 실익이 없다’는 경찰 쪽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했다.

한편, ㄱ씨 고소에 대한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신문고나 경찰민원포털 등을 통해 ‘성차별적이고 편파적인 시선에 의한 수사로 중립성과 객관성을 가져야 할 수사 기관의 직무 유기’라며 항의하는 누리꾼들도 이어지고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