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95> 정약용이 다산초당에서 한여름 풍경을 읊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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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집의 새끼들 점점 깃이 생겨나고(燕家兒子漸生翎·연가아자점생령)/ 어미 제비 때때로 와서 불경 소릴 듣는다네.
/ 그렇지만 타고나길 불성이 아니라서(終是天機非佛性·종시천기비불성)/ 다시 휙휙 날며 잠자리 낚아챈다네.
정약용이 백련사에 자주 왕래했으므로 어미 제비가 불경 소리를 듣는 곳은 백련사이다.
제비가 타고나기를 불성이 없는데 아무리 불경을 접한들 성불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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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집의 새끼들 점점 깃이 생겨나고(燕家兒子漸生翎·연가아자점생령)/ 어미 제비 때때로 와서 불경 소릴 듣는다네.(燕母時來亦聽經·연모시래역청경)/ 그렇지만 타고나길 불성이 아니라서(終是天機非佛性·종시천기비불성)/ 다시 휙휙 날며 잠자리 낚아챈다네.(還飛去捕綠蜻蜓·환비거포록청정)
위 시는 다산 정약용의 ‘산거잡흥(山居雜興)’ 20수 중 일곱 번째 작품으로, 그의 문집인 ‘다산시문집’ 권 5에 수록돼 있다. 그는 시 앞에 다음과 같이 머리글을 썼다. “내가 혜장(惠藏)에게 산거잡흥(山居雜興)을 시로 읊어보라고 했는데, 얼마 후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자꾸 그쪽으로 쏠리면서 내가 만약 그 처지라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그를 대신해서 붓을 잡고 이와 같은 선어(禪語)를 써보았던 것인데 도합 20수에 달한다. … ”
아암 혜장(兒庵 惠藏·1772~1811)은 다산초당 인근 만덕산 백련사(白蓮寺)에 주지로 있던 스님이다. 그는 불경은 물론 유가 지식까지 박식하여 백련사에 있을 때 정약용과 친분이 두터웠다.
정약용이 혜장 스님에게 산거잡흥을 읊어보라고 했다가 자신이 붓을 들고 20수를 지어버렸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산길로 1㎞가량 떨어졌다. 정약용이 백련사에 자주 왕래했으므로 어미 제비가 불경 소리를 듣는 곳은 백련사이다. 제비가 타고나기를 불성이 없는데 아무리 불경을 접한들 성불할 리 없다. 스님이 염불하든 말든, 새끼 먹이고 자신도 먹기 위해 본성대로 잠자리를 잡는다. 여름 한낮이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곳 지리산 화개골에도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필자가 어릴 때 앉아 있는 잠자리를 뒤쪽에서 살그머니 손을 뻗어 잡으며 놀았다. 주로 왕잠자리를 잡았다. 요즘 왕잠자리를 통 볼 수 없다. 어떤 땐 두 마리가 붙어있는 걸 한꺼번에 잡기도 했다. 더우면 친구들과 집 뒤 작은 강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물밤을 따 까먹으며 여름을 보냈다.
이상기후가 생태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비를 퍼붓다 갑자기 멈추는 스콜 현상은 좀 가까이 다가온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가 미친 듯 내리다 멈추면 햇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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