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4> 검은콩과 화순 흑두부
- 화순천 능주평야서 자란 검은콩
- 맷돌로 갈아 무쇠솥에 콩물 끓여
- 흑두부로 굳힐땐 무안 소금 사용
- 송광사 현고스님께 조리법 배운
- 화순사람 양덕승 씨 원조로 불려
- 홍어·수육과 함께 곁들이는 삼합
- 청국장·순두부도 담박한 맛 개운
- 흑돼지·오골계와 함께 대표 음식
염천에 식욕이 없을 때 고소하게 입맛을 돌려주면서도 영양가가 높아 건강까지 챙겨주는 음식으로, 콩으로 만든 콩국이나 콩국수가 있겠다. 부드러운 우무를 넣고 차갑게 훌훌 들이켜는 콩국은 마치 찬 새미에서 약수 마시듯 그 시원함이 웅숭깊다.
폭염의 나날에 밥알이 모래알 같을 때 걸쭉한 콩국에 말아낸 콩국수 한 그릇은, 후루룩 고소하고 쉽게 입으로 넘어가는 훌륭한 한 끼가 된다. 물론 기력 회복에도 참 좋은 건강식이기도 하다.
▮두부의 끝없는 변주
콩은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소중한 곡식이자 주요한 단백질원으로 식생활에 크게 관여하는 식재료이다. 풋콩은 삶아서 먹고, 추수한 콩으로는 콩밥과 콩자반을 해서 먹고, 메주를 떠서 된장과 간장 등 발효 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싹을 틔워 콩나물로 길러 먹고, 기름으로 짜 식용유로 쓴다. 콩을 갈거나 짜 콩국과 콩국수, 두유 등으로도 먹을 수 있다.
그중 두부는 다양한 음식의 주요 재료로 활용되기에 팔방미인으로 손꼽힌다. 주로 두부를 먹기 좋게 썰어 생으로 간장에 찍어 먹거나, 굽거나 조려서 먹기도 한다. 국이나 찌개 전골 등에 넣어 먹기도 하고, 김치와 곁들여 두부김치로, 돼지 수육과 함께 보쌈으로도 먹는다. 마파두부처럼 두부와 채소로 소스를 만들어 덮밥으로도 먹는다.
동아시아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이 두부를 다양하게 즐겨 먹는데, 대표적으로 중화권의 ‘취두부’ ‘두부 푸딩’이나 일본의 두부전골인 ‘도후 나베’나 튀긴 조미 두부 ‘아게다시 도후’ 등이 있겠다.
▮검은콩의 약성을 담다
우리 민족이 ‘두부’를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 즈음이라고 추정한다. 고려말 유학자 이색의 시문집 ‘목은집’에 ‘1365년(공민왕 14) 과거를 치른 후 두부를 먹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후 두부를 기록한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두부는 ‘좋은 날’에 먹거나 ‘고마운 이’에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여러 가지 두부 제조법과 조리법이 발달하면서 전 국민의 영양식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됐다.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잘 담은 두부 요리가 우리나라 여러 곳에 분포하는데, 서울의 ‘추어두부’와 대전의 ‘두부두루치기’, 강원도 강릉의 ‘초당순두부’, 전라남도 화순의 ‘흑두부’ 경기도 파주의 ‘장단콩 두부’ 등이 지역의 대표적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아 사랑받는다.
‘추어 두부’는 가마솥에 미꾸라지를 넣고 불을 때다 찬 모두부를 넣으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는데, 이를 먹기 좋게 썰어낸 음식이다. ‘두부두루치기’는 돼지두루치기의 돼지고기 대신 두부를 넣고 매운 양념장으로 자작하게 끓여내는 음식이다.
‘흑두부’는 서리태 등 검은콩으로, ‘장단콩 두부’는 장단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낸다.
그중 화순 흑두부는 일반 두부와 제조법은 비슷한데 검은콩의 효능에 방점을 찍은 힐링 식품이란 점이 독특하다. 약성이 좋은 검은콩을 재료로 두부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민적으로 관심을 받는 ‘블랙푸드’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랙푸드’는 검은색 식재료나 음식을 일컫는 말인데, 안토시아닌 등 항암물질 등을 다량 함유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콩 또한 그 영양가나 약성이 높아 대표적인 블랙푸드로 꼽힌다.
검은콩에는 일반 흑태, 늦가을 서리 내릴 때 수확하는 서리태, 알곡이 작고 쥐눈처럼 까만 서목태 등이 있다. 이 검은콩은 대표적인 블랙푸드로 양질의 단백질, 지방과 안토시아닌 등이 풍부하게 함유된 건강식품이다. 이들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를 낸다. 탈모를 예방하는 등 모발 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서목태, 일명 쥐눈이콩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약성이 뛰어나 체중 조절과 혈당 관리를 돕고 비타민과 무기질 함량이 높아 건강 관리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삼합 화룡점정 화순 흑두부
전라남도 화순군은 화순천 유역의 능주 평야를 중심으로 농업이 크게 이뤄지는 곳이다. 콩은 화순의 주요 농산물 중 하나이다. 그러하기에 이 지역에서는 예전부터 두부 등 콩을 이용한 음식이 유명했다.
화순군의 흑두부는 검은콩을 갈아서 끓인 콩물을 바닷물로 굳혀 만든 화순군의 향토식품이다. 흑두부를 이용한 보쌈 전 전골 찌개 삼합 등 다양한 음식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명실상부한 화순군의 대표 특산물로 인정받는다.
화순군 흑두부는 검은콩을 5~6시간 충분히 물에 불린 다음 맷돌로 정성껏 갈아 만든 콩물을 무쇠솥에 넣어 주걱으로 저어가면서 끓인다. 이때 소나무로 불을 올린 다음 참나무 장작으로 두부를 끓여낸다. 그래야 본연의 고소함이 발현된다고 한다. 두부를 굳힐 때도 무안 바닷물이나 무안 염전의 천일염을 이용한단다.
원래 흑두부는 오래전부터 사찰 음식으로 통했다. 화순 흑두부는 송광사의 현고 스님에게서 그 제조법을 이어받은 화순 사람 양덕승 씨가 검은콩을 이용해 만든 것이 그 유래다. 이 흑두부가 화순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 화순 흑돼지, 오골계 등과 더불어 화순의 블랙푸드 산업의 ‘완성체’를 이룬 것이다.
이 흑두부를 직접 개발했다는 식당에서 다양한 흑두부 음식을 일별해 보았다. 우선 흑두부 삼합. 흑두부에 잘 삭힌 홍어와 돼지 수육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큰 접시에 약간 회색빛을 띤 흑두부가 먹기 좋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잘 삭은 홍어와 고소한 육향의 돼지 수육이 넉넉하다. 그리고 직접 담근 묵은지, 깻잎지와 무말랭이가 먹음직스럽게 조연을 맡는다. 홍어삼합에 흑두부가 한 합 더해진, 가히 전라도에서나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 조합이겠다.
▮어우러져 더 풍성한 맛을 내네
이 삼합을 보쌈으로도 먹고 젓가락으로 여러 개 포개 집어먹는다. 들큼하고 쿰쿰하고, 고소하고 칼칼하고, 부드럽고 오돌오돌하고, 아삭아삭하고 쫀득쫀득하다. 이런 오만 가지 맛깔 위로 흑두부가 정점을 찍는다. 특히 서해 새우젓갈 몇 마리 흑두부 위에 올리면, 서해를 한입에 품듯 삼합의 조합이 마무리된다.
흑두부 삼합에 이어 들어온 흑두부 청국장과 순두부. 청국장은 된장국이 살려내는 최적의 맛과 향을 가졌다. 구수하면서도 제대로 콤콤한 냄새. 그러나 퀴퀴하진 않은 담박한 맛이 정겹다. 이어 흑두부 순두부는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하고, 고소하면서도 개운하다. 슴슴한 국물이 떠먹을수록 오래도록 음미하게 되는 깊은 맛이 있다.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화순 흑두부. 일반 두부가 주로 식재료 역할을 한다면, 화순의 흑두부는 홍어, 돼지 수육과 함께 어엿한 주연의 자리를 차지하는 삼합의 음식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화순(和順), ‘온화하고 순한 고을’에서 오랜 정성으로, ‘사람 좋은 음식’으로 만든 음식이 바로 흑두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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