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성실한 스포츠 노동자의 고뇌 [김용석의 언어탐방]
김용석 | 철학자
자신감을 잃었어. 갑자기 겁쟁이가 된 것 같아. 초조하기 짝이 없어. 경기력을 되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두려울 뿐이야.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안 돼. 아니, 더 엉망이야. 미칠 것 같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아니야. 귀신이 붙었나 봐. 악몽이라면 빨리 깨어라!
슬럼프(slump)에 빠진 운동선수들로부터 직접 들은 말과 했을 법한 말들을 모아봤다. 슬럼프는 떨어지다, 추락하다, 푹 꺼지다, 훅 가라앉다, 털썩 주저앉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 어원은 불확실하나 19세기 표준 독일어가 정립되기 전의 북부 독일어 ‘슬룸펜’(slumpen)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슬럼프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삶에서 위험한 시기를 가리킨다. 19세기부터 경제용어로서 슬럼프는 경기후퇴(recession)와 동의어로 쓰여왔다. 호황에서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기에 걸맞은 표현이기 때문이리라. 20세기부터는 스포츠에서 슬럼프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해오고 있다.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의 이야기는 한편의 스포츠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경제에서든 운동 경기에서든 슬럼프에 빠졌다는 건 ‘좋은 시절’ 또한 있었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아주 좋은 시절을 보낼수록 언젠가는 슬럼프에 빠질 잠재적 위험부담 또한 증가한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순풍에 성장의 항해를 지속하며 호황을 누릴 수는 없다. 불황의 좌초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선수 개인이든 경기 단체든 경기력의 부침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스포츠에서 슬럼프는 단순하고 아주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끈적끈적 몸과 맘을 휘감고는 떠나지 않는 검은 기운 같은 것이다. 이른바 스타플레이어에게는 더 잘 찾아온다. 눈에 띄게 잘나가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슬럼프의 기미만 있어도 모든 사람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슬럼프에 빠진 스타플레이어는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는다. 슬럼프의 기운은 그 관심을 먹이 삼아 점점 더 강해져 선수를 옥죈다.
어찌해야 할까. 심리상담가, 정신과 의사, 뇌과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슬럼프 극복의 처방을 내놓지만 그 효과는 신통치 못한 것 같다. 극복이 아니라 탈출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은 모호함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슬럼프 극복을 위해 ‘선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라’는 형이상학적 주문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구체적이지 못하다. 이보다 더한 신비주의적 조언들도 있다.
심리, 정신, 뇌 등을 거론한다는 것은 삶의 질 또는 행위의 질 등 질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을 시도함을 뜻한다. 하지만 슬럼프에는 좀 더 세속적인 접근이 필요할지 모른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에서 슬럼프는 ‘양(量)의 문제’라는 관점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에서 호황과 불황은 본질적으로 양의 문제다. 이는 모든 경제 현상을 수와 통계로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현대 스포츠도 양적 차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스포츠가 전적으로 아마추어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슬럼프의 문제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추어는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 안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양적 과부하의 문제가 없다. 오늘날 본래 의미의 아마추어가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럽고,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확연한 구분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현실적으로 슬럼프의 문제는 프로의 문제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인데 비 때문에 실내 수업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다양한 운동 경기의 역사를 설명하던 중 권투에 관한 질문을 했다. 복싱에서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학생들은 글러브의 무게, 경기복의 차이 등 다양한 답을 시도했지만, 선생님은 듣고 보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를 설명했다. 아마는 3라운드 경기로 제한되지만, 프로는 8, 10, 12, 15라운드까지 경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16살 소년의 머리엔 프로 선수는 엄청난 ‘일’을 한다는 사실이 확 들어왔다.
프로 선수는 직업을 갖고 ‘노동’을 한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건 프로 선수들에게 일과 노동이란 말은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게 현실이다. 더구나 최근 몇십년 동안 거의 모든 종목에서 그들의 노동 강도는 점점 세졌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유럽에 오래 거주했던 나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축구 경기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었다. 각 나라의 축구 1부 리그는 16개 팀에서 18개로, 이어서 20개 팀으로 늘었다. 작은 차이 같지만, 이는 시즌당 경기 수를 30회에서 38회로 25% 이상 늘린다. 각종 국제 대회 수도 엄청 증가했다. 일부 선수는 각 나라 대표로도 수많은 경기를 치러야 한다. 축구 월드컵을 4년 주기에서 격년 주기로 바꾸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이런 경향은 야구, 농구, 골프, 테니스 등 인기 종목뿐만 아니라, 아마인지 프로인지 헷갈리는 오늘날 육상 선수들에게도 나타난다. 오랫동안 아마추어 정신을 유지했던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올림픽이 육상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자체가 다양한 종목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1983년 4년 주기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창설했다. 얼마 안 지나 1990년대에는 격년 주기로 바꾸었다.
양이 너무 많아지면 관리하기 힘들어진다.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수십, 수백가지 슬럼프의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양의 문제가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슬럼프를 덜 겪는 선수가 살아남는다는 말도 있다. 스포츠는 예술이자 노동이다. 우리는 승리의 영광에 가려진 성실한 ‘스포츠 노동자’의 고통과 고뇌를 이해해야 한다.
언어탐방의 관점에서 사족 하나. 슬럼프라는 말이 발생한 서양에서는 주로 경제나 스포츠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학업과 직장 업무에서도 이 외래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공부를 하는 데에도 업무를 보는 데에도 양의 균형을 못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슬럼프가 누구에게나 일상용어가 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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