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혐오 ‘집게손’ 사건에 가해자 편들며 불송치한 경찰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 ‘집게손가락’을 은밀히 그려넣어 남성을 비하했다면서 엉뚱한 하청업체 여성 직원의 신상을 공개하고 모욕한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에서 ‘집게손가락 동작’은 기업 광고에 금기시되는 풍토이며, 피해자가 해당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전에 페미니스트에 동조하는 듯한 글을 올렸으므로 이용자들의 비판이 논리적으로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법 집행기관이 어떻게 도리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인지 이 상황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공개된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서 여성 캐릭터가 0.1초 동안 엄지와 검지를 오므린 동작을 놓고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남성혐오 표현이라며 문제를 삼은 것이었다. 이들은 해당 그림을 그린 이로 하청업체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목하며 이름과 사진 등을 공개하고 도를 넘는 성적 모욕과 살해 협박 등을 가했다. 실제 해당 장면은 40대 남성이 작업하고 50대 남성이 검수한 그림으로 연결 동작 과정에서 우연히 잡힌 포즈였을 뿐이지만, 넥슨 측은 별다른 사실 확인 없이 하청업체에 법적 대응 운운하며 사과문을 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블랙코미디라 해도 믿기 어려울 사건이었으나, 경찰은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데 힘쓰긴커녕 오히려 불송치 결정문에 페미니즘 혐오 논리를 그대로 실음으로써 면죄부를 줬다. 경찰 설명대로라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무심코라도 집게손가락 동작을 취해선 안 되고, 하지도 않은 일로 온라인 집단 괴롭힘을 당해도 페미니즘에 동조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게다가 경찰은 피해자에게 가해진 수천건의 협박과 성적 모욕을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으로 축소하는가 하면, 트위터는 미국 기업이라 수사가 어렵다며 혐오 글을 막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의미 없는 동작에조차 ‘집게손가락 음모론’을 뒤집어씌우는 이 비이성적 논란에 직접 가세한 것도 모자라, 수사의 중립성을 상실했으며 온라인상 위협이 실제 가해로 이어지는 최근의 범죄 경향까지 무시하는 나태함을 보였다. 이런 경찰을 어떻게 믿고 성폭력 범죄와 온라인 집단 괴롭힘 수사를 맡길 수 있겠나. 총체적 문제를 드러낸 이번 불송치 결정에 대해 경찰청장이 직접 소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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