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방송 4법’ 재의요구 첫 속도 조절
대통령실 “재가는 여유 있게”…처음으로 속도 조절
잦고 많은 거부권 부담됐나…휴가 ‘민생 행보’ 부각?
방송 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여름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안을 이날 즉시 재가하지는 않았다. 잦은 거부권 행사로 연거푸 ‘거부권 정국’이 형성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이제까지 15개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무회의 의결 당일을 넘긴 적은 없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방송 4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번 개정안들은 공영방송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그간 누적돼온 공영방송의 편향성 등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고 재의요구안 의결 이유를 밝혔다.
방송 4법은 지난달 말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해 법안 처리 저지에 나섰지만 야당은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하고 법안들을 가결했다.
대통령실은 앞서 이 법안들에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다만 지난 5일부터 여름 휴가 중인 윤 대통령은 이날 바로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재의요구안) 재가는 조금 여유 있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적 상황을 주시하면서 재가 시점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부터 지난달 9일 채 상병 특검법까지 총 15개 법안을 국회로 되돌려보냈다. 15개 법안 모두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이 의결된 날 이를 재가하는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처럼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이는거부권 논란이 연이어 나오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야당 주도로 의결된 전국민 25만원 지원법·노란봉투법은 지난 5일 정부에 이송됐다. 오는 13일 국무회의에서 이 두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될 가능성이 있다. 거부권 행사를 순차적으로 할 경우 일주일 사이 연거푸 거부권 행사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방송 4법까지 묶어 6개 법안의 재의요구안을 일괄 재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방송 4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14일이다. 다만 휴가 기간 방송 4법을 우선 처리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6개 법안에 모두 거부권을 행사하면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총 21개의 법안을 거부한 대통령이 된다. 임기 중 총 45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헌정사상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 횟수를 합한 것(21회)과 같은 수치다.
이번 휴가 기간 윤 대통령의 민생 밀착 행보가 거부권 정국에 덮일 것을 우려해 재가를 미뤘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휴가 첫날인 지난 5일 경남 통영중앙시장을 방문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폭염 대책과 농수산물 수급 대책을 꼼꼼히 챙겨달라고 관계 부처에 당부했다며 윤 대통령이 군 장교와 부사관들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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