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의혹 남긴 한양증권 매각戰 [금융팀의 뱅크워치]

강우석 기자 2024. 8. 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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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양대 본관 및 신본관 전경. 한양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한양학원은 병원 경영난, 건설 계열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인해 한양증권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달 2일 KCGI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시장에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안지현 기자 anji1227@donga.com
강우석 경제부 기자
한양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한양학원이 한양증권의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달 2일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CGI를 우선협상대상자(우협)로 선정했습니다. 양 측은 약 5주 동안의 상세 실사를 거친 뒤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자본시장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기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번 한양증권 경영권 거래 과정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제법 많습니다.

⓵ 상장사 경영권 매각 맞아? 끊임없는 정보 유출

한양증권은 1988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회사입니다. 통상적으로 상장사가 경영권 매각을 추진할 때는 ‘물 밑에서’, ‘조용히’ 진행합니다. 매각 이슈가 불특정 투자자에게 노출되면 주가가 출렁이고, 이로 인해 거래 가격을 협상하는 데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양증권의 매각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입찰에 추가로 참여한 기업이 나타나면 12시간도 안 돼 언론에 대서특필 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한양학원이 이달 2일에 우협을 선정할 예정’이란 사실이 일찌감치 노출됐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네이버가 운영 중인 한양증권 종목 토론방에는 1일부터 “우협 공시가 임박했다”는 글이 수두룩합니다. 한 유료 매체는 1일 저녁 6시 경에 “우협, 2일 장 마감 뒤 발표한다”는 제목의 보도까지 냈습니다.

실제로 한양증권은 2일 장 마감 이후 KCGI를 우협으로 선정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단순한 우연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인수합병(M&A) 시장을 5년 넘게 취재해온 기자에겐 이런 상황이 그저 낯설기만 합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생각도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형 회계법인 대표 A 씨는 “통상 상장사 경영권 매각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편이고, 보도내용이나 일각의 소문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번 한양증권 매각과 관련된 정보들은 믿기 힘들만큼 정확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회계법인 전무 B 씨도 “누군가 작정하고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⓶ 깜깜이 매각·파킹 거래 논란

한양증권 인수를 검토했던 기업들은 매각 절차가 불투명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모든 입찰 참여자들에게 동일한 정보와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양학원은 한양증권의 매각을 공식화한 지 불과 3주 만에 우협을 선정했습니다. 예비입찰은 실시했지만 별도의 본입찰 절차 없이 KCGI를 택했습니다. 당시 한양학원은 “한양대학교의료원이 시설 노후, 열악한 의료 여건으로 수 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와중에 전공의 파업까지 겹쳐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며 “한양증권의 주식 일부를 처분해 학교 전출금, 의료원 지원금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학원 차원에서 급전이 필요해 한양증권 지분 매각을 서두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저희가) 인수의향서 내려고 할 땐 받으려 하지도 않더니 갑자기 마감날 아침에 ‘오늘까지 제안서를 내달라’고 연락을 줬다”며 ”입찰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저희를) 급하게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한양학원이 매수자를 일찌감치 KCGI로 점찍어두고 입찰을 형식적으로 진행했다는 말이 쉼 없이 나옵니다. 한양학원과 김종량 한양대 이사장까지 지분 일부를 남겨두고 팔기로 하면서 양 측이 ‘파킹 거래(경영권을 잠시 맡겼다 다시 가져오는 것)’를 사전에 모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이번 거래 대상은 한양학원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한양증권 지분 30%이며, 매각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한양학원과 김 이사장은 총 9%의 지분을 남겨두게 됩니다. 한양학원이 향후 경영을 정상화한 다음 한양증권을 되사올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설득력이 실리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KCGI가 써낸 한양증권 가격이 공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KCGI는 한양증권 지분 29.6%를 2448억 원에 사겠다고 밝혔습니다. 주당 6만5000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금일 종가(1만8350원)에 비해 무려 3배 넘게 비싼 수준입니다.

당시 KCGI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양증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정도와 레버리지배율(기업이 얼마나 부채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 증권업계 최저 수준”이라며 “KCGI자산운용, KCGI대체투자운용 등과의 시너지도 예상돼 그려 나갈 미래가 무궁무진하다”고 높은 가격을 제시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다만 “최종 매매 대금은 5주간의 실사 과정을 거쳐 조정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이에 대해 몇 년 전 한양증권 인수를 검토했던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KCGI가 2448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한양증권을 사들여야 하는데, 공시된 가격 수준이라면 펀드에 투자할 기관투자자를 찾기 힘들 수도 있다”며 “대형 증권사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한양증권의 PBR을 1.68배(우선주 포함)로 평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⓷ 금감원 “대주주 적격성 꼼꼼히 살필 것”

KCGI가 한양증권의 최대 주주로 오르기 위해선 금융 당국의 심사 관문(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금융감독원도 한양증권 매각과 관련된 의혹들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KCGI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에서) 제기된 파킹거래 논란, 공정성 논란 등을 살펴보고 있다”며 “(KCGI가) 한양증권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요청하는 즉시 면밀하게 따져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시장에서 제기된 의문들과 관련해 말을 아꼈습니다. 강 대표는 기자에게 “주식매매 계약에 싸인(서명) 전까지는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한다”고 답했습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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