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비중 3년 내 60%로”… 의료계 “정부 못 믿어”

정재영 2024. 8. 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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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빅5’ 등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중을 현행 50% 수준에서 3년 안에 60%까지 상향하고,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로 운영되는 ‘전문인력 중심병원’으로의 전환 등을 위해 전공의 근로의존도를 현행 40%에서 단계적으로 20%까지 줄여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는 하지만 중증환자 비중을 늘리려면 수가 인상 등 재원 확보가 선행돼야 하는데다 “20년 넘게 말로만 수가 개편을 언급한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체 전공의의 92% 이상이 수련병원을 떠난 지 7개월째에 접어든 상황에 정부는 의료개혁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개혁 동력을 마련하려면 병원을 이탈한 1만2000여명의 전공의들을 정책 마련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년째 이어지는 전공의 공백에도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인력 중심 구조 전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한 6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3년내 중증환자 비중 60%까지 확대”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6일 ‘의료개혁 추진상황’ 첫 브리핑에서 9월 시행 예정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과 관련해 “상급종합병원을 ‘중증환자 중심병원’으로 전환해 중증·응급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약 3년의 시간을 두고, 환자 기준으로 평균 50% 수준인 중증환자 비중을 6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2027년 6기 상급종합병원 지정시에는 중증기준인 ‘전문진료질병군 입원환자’ 비중의 하한선을 현재 34%에서 적정 수준으로 상향하고, ‘현행 중증환자 기준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료 현장 의견도 적극 수렴할 방침이다.

현재 478개 전문진료질병군은 같은 수술·시술이라도 환자연령, 기저질환, 응급도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수용해, 중증 환자가 응급실로 이송돼 입원하는 경우나 일부 중증 소아 수술, 중증 암에 대한 로봇수술 등도 중증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보완할 계획이다. 일반 병상은 지역과 병상 규모, 비상진료체계 하에서 병상 감축 수준 등을 고려해 5~15% 수준의 병상을 감축할 방침이다.

전문인력 중심병원 전환도 차질없이 추진한다.

정 단장은 “그간 전공의가 담당했던 업무를 전문의와 PA간호사가 담당할 수 있도록, 병원 자체적인 훈련 프로그램 도입과 업무 효율화 과정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연속수련시간과 근로시간을 개선해 평균 40%인 전공의 근로 의존도를 절반인 20% 이하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의대증원에 반발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 가운데 6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20년간 수가개편 언급’한 정부, 못믿어”

의료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의 방향성엔 공감하면서도 예산 확보 등에 있어서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다. 현재 수가 체계에서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병원의 적자폭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중환자실 병상 1개를 늘릴 때마다 대략 1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단순히 중환자실에 침대를 하나 더 갖다 놓는게 아니라 각종 의료기기가 설치돼야 하고, 추가적인 인건비도 든다”면서 “적자가 아닌 일반병상을 줄이고, 중증환자 비율을 높인다는 건 중환자실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니까 적자폭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은 중증 환자에 대한 수가를 대폭 늘리거나, 수가가 아니더라도 보상이 있어야 이를 유지할 수 있다”며 “결국은 다시 ‘재원을 어디서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인력 중심병원에 대한 회의론도 여전하다.

전공의 이탈로 당분간 전문의 배출이 요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원의들을 대형병원으로 유인하는 것 역시 재원의 문제가 얽힐 수 밖에 없다. 자칫 지방 대형병원의 전문의가 수도권으로 유입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조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창민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정부가 60%라는 수치만 제시할 뿐, 가시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며 “수가 개편 얘기도 20년 넘게 말만 하니 의사들은 정부를 신뢰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들에게는 경증 환자가 오지 않게 막을 권한이 없다. 폐암 4기 환자를 보기 위해 비워둔 진료시간에 기침 환자가 와도 진료를 봐야 한다”며 “의사가 환자의 의무기록을 보고 진료를 판단하게 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단장은 이에 대해 “중증 입원과 수술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응급진료에 드는 대기시간 등의 노력과 적합질환 진료와 진료협력 등 성과를 충분히 보상하는 체계로 개편하겠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단시간에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시범사업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하면서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안에 대해선 “의료개혁특위의 추가적인 논의와 현장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8월 말 9월 초 확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빠르면 9월부터 시범사업을 추진해 먼저 준비가 된 상급종합병원부터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박단 “경찰 참고인 조사 출석 요구”

한편, 전체 전공의 92% 이상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 7개월째에 접어든 가운데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에 대한 경찰 조사도 임박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전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지난 8월 1일 서울경찰청 참고인 조사 출석 요구서를 등기 우편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변호인을 찾지 못해 출석일시 변경을 요청했다면서 “사직서를 제출한 지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 와서 경찰 권력까지동원하는 것을 보니 정부가 내심 조급한가 보다. 끝까지 힘으로 굴복시키겠단 것이냐.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미 입건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현직 간부 6명의 혐의 입증을 위한 참고인 조사라는 입장으로, 박 위원장이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에 대해 “현재까진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의료법 위반, 교사·방조 등 혐의로 고발된 의협의 김택우 전 비대위원장, 주수호 전 홍보위원장, 박명하 전 조직강화위원장과 임현택 회장 등을 조사하고 있다.

정재영·이정우·조희연·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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