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동 안가서 울린 총성 … 이선균 살리려는 조정석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8. 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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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 14일 개봉
10·26 재판 다룬 첫 영화
거사 가담한 박 대령 역할
고 이선균 마지막 작품돼
천만 영화 '광해' 연출했던
추창민 감독이 메가폰 잡아
'서울의 봄' '헌트' '1987' 등
시대극 인기 이을지 관심도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26에 가담했던 박태주 대령(이선균·왼쪽)과 그의 변호를 맡은 10·26 변호인단 소속 정인후(조정석·오른쪽)를 다룬다. NEW

배우 이선균의 유작이 공개됐다. 스크린에서 확인할 그의 마지막 배역은 '군인'이다. 꼭 20년 전, 2004년 작 '알 포인트'에서 베트남전 참전 군인 박재영 하사를 연기한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그런 껄렁껄렁한 언행을 가진 다혈질 말단 부사관이 아니라 형형한 눈빛으로 죽음을 맞는 대령이다. '1979년 10월 26일 바로 그날, 거사 30분 전 상관 지시를 받아 사건에 동조했다면 그의 죄명은 국가전복 내란죄인가, 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복종인가'를 논쟁적으로 묻는 법정 영화다.

이선균·조정석·유재명 주연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 '행복의 나라'를 6일 언론시사회에서 살펴봤다.

중심 인물은 박태주 대령(이선균), 정인후 변호사(조정석), 전상두 합수단장(유재명)이다.

한국현대사의 물줄기가 총성 한 방으로 역류했던 1979년 10월의 바로 그날,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 대령은 '거사 30분 전'에 직속 상관인 정보부장의 명(命)을 받는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호원을 즉시 제압하라'는 내용이었다. 사나이는 '나'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오른팔이라도 잘라 쟁반 위에 올려 상재하는 법. 지시를 따른 박 대령 손아귀에서도 총성은 울렸다. 그렇다면 박 대령은 내란에 직접 동조한 걸까, 아니면 상관의 명령에 따른 걸까.

정보부장 재판에 무게중심이 쏠린 가운데, 박 대령 재판은 법정 문밖을 부유한다. 박 대령 재판을 맡으려는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사건 가담자 중 박 대령만이 군인 신분이어서, 그의 재판은 민간의 3심제가 아닌 군법정의 단심제(1심제)로 끝나 승소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런 가운데 10·26 대통령 시해 사건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변호사 정인후가 의지할 곳 없는 박 대령의 변호에 나선다.

두 사람 앞에 나타난 문제적 인물은 권력을 가진 합수부장 전상두. 그는 재판을 실시간으로 감청하면서 판사에게 은막의 지시를 내린다. "나 하나 살자고 부장님을 팔아넘길 순 없다"며 고개를 빳빳이 드는 군인 박 대령을 가운데 두고 '재판은 정의와 부정의의 싸움이 아니라 오직 승패만이 갈리는 링'이라고 믿는 정인후와 그를 방해하려는 전상두가 맞선다. 박 대령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행복의 나라'는 한국 영화사에서 대한민국 10·26 사건 직후의 재판을 다룬 최초의 영화다. 10·26 사건을 다룬 영화로는 임상수 감독의 2005년작 '그때 그 사람들', 우민호 감독의 2020년작 '남산의 부장들'이 꼽힌다. 두 작품은 과거의 재연과 재현에 집중하면서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관객 눈앞에 전시하는 목격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행복의 나라'는 사건이 벌어진 궁정동 안가의 담장 안을 바라보려는 관음증적 시선을 잠시 비껴가서 그날 이후 벌어진 재판의 속살에 손으로 만져질 듯이 다가간다. 1232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신작이란 점에서 기대감은 높다. 추 감독이 영화 '7년의 밤' 흥행 실패를 이번 '행복의 나라'에선 어떤 연출로 설욕하려 했을지도 관심사다.

특히 이 영화는 우리가 걸어온 실제 역사에서 '중앙정보부장이 왜 대통령 총격 후 남산(중앙정보부)이 아닌 용산(육군본부)을 택했는가'의 문제를 정밀하게 파고든다. 육군참모총장이 한 차에 탑승한 상황에서 정보부장에게 용산행(行)을 건의한 인물은 박 대령이었다. 이 경우 내란죄가 성립되긴 어렵다. 국가 전복과 정권 탈취의 의지가 있었다면 박 대령도 정보부장도 남산행이 옳았다. 하지만 이 문제 제기는 12·12 군사반란으로 그 희망이 꺾여버리는 것으로 영화는 그린다.

조정석과 유재명의 피가 튀는 연기 쟁투, 그 사이에 선 이선균, 아울러 우현, 이원종, 전배수, 최원영, 유성주 등 얼굴만 보면 한국 사람이 다 아는 명배우들은 이 영화를 더 영화답게 만든다. 유재명이 열연한 전상두는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맡은 배역 전두광의 깊이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이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비밀의 숲'의 이창준 검사를 떠올리게 한다. 조정석은 진지한 연기 사이로 코믹함을 두 스푼쯤 넣은 깊이감을 보여준다.

이선균이 연기한 박태주 대령은 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을 모티프로 만든 캐릭터다. 박흥주 대령은 김재규의 심복으로, 1979년 시월 그날의 사건에 가담했다. 실제 역사에서 김재규는 "부하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형량을 줄이려 분투했으나, 법정은 박흥주 대령을 비롯한 부하들을 공범으로 봤고 선처하지 않았다. 박흥주 대령은 사건 발생 약 5개월 뒤인 1980년 3월 6일 총살형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1979년부터 1980년대를 다룬 시대극이 영화계를 들썩이게 했던 근래의 흥행 성적으로 볼 때 '행복의 나라'도 그 대열에 합류할지 관심을 끈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헌트' '1987' 등 1980년대를 다룬 영화는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영화는 오는 14일 개봉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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