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밸류업’ 찬물 끼얹은 두산 박정원 회장 [한양경제]

이승욱 기자 2024. 8. 6. 1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두산그룹, 한국 경제계 위상과 ‘엇박자’ 행보
오너 일가 등 ‘캐시카우’ 두산밥캣 지배력 강화
‘기울어진 운동장’ 비난에 책임있는 자세 보여야

이 기사는 종합경제매체 한양경제 기사입니다

한양경제 이승욱 국장 / 금융에디터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전임 회장만 14명이 거쳐 갔다. 그런데 역대 회장 4명은 두산그룹 회장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두산그룹 창업 2세대인 박두병 회장이 상의 회장(재임 연도 1967~1973)을 처음 지낸 이후, 3세대 박용성(2000~2005), 박용만(2013~2021) 회장 등도 상의 회장직 바통을 받았다.

전문경영인 출신 정수창 두산 회장(1967~1973)도 상의 회장직을 거쳤으니, 대한상의 공식 출범(1954년) 후 햇수로만 절반가량을 두산 회장들이 채운 셈이 된다. 국내 최고(最古) 기업으로서,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배출한 기업으로서 두산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두산그룹이 최근 과거 위상과는 맞지 않는 ‘엇박자’ 행보를 보여 의아하다. 그룹 내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리밸런싱’에 대한 비판이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의 근원지는 이해관계가 얽힌 개미투자자의 날이 선 ‘공격’뿐만은 아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사진 오른쪽)과 두산그룹 사옥 전경. 연합뉴스

올 들어 정부가 깃대를 꽂고, 산업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이른바 ‘K-밸류업’에 대한 우려라는 점에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두산으로 인해 ‘K-밸류업(up)’이 아니라 ‘K-밸류다운(down)’이 된 격이 됐다”며 자조 섞인 반응도 내놓는다.

복잡한 구조와 넘버를 빼고 두산그룹이 선보인 지배구조 재편의 핵심 설계는 ‘심플’하다.

중간지주사 두산에너빌리티의 A투자사업부문 인적분할→A투자사업부문에 에너빌리티 자회사 두산밥캣을 붙임→A투자사업부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로보틱스와 밥캣 주식 교환)→밥캣 주주, 주식 반납 후 로보틱스가 인수→밥캣 상장폐지

문제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기존 주주의 이해관계가 뒤엉킨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고수익을 내는 밥캣에 투자한 주주는 실적이 저조한 기업의 주식으로 갈아타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밥캣과 로보틱스의 주식 교환 비율은 1대 0.63으로 알려졌다. 밥캣 주식 100주가 로보틱스 63주로 교환되는 셈이다.

밥캣의 지난해 매출은 10조원에 육박한다. 영업이익은 약 1조3천900억원으로 두산 전체 영업이익 97%에 달한다. 반면 로보틱스는 지난해 19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이후 만연 적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으며 전반적인 그룹 내 계열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로보틱스의 혁신적인 로봇 기술을 활용해 시너지를 올릴 수 있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합병비율 등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안전 장치가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나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하는 이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밥캣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이하, 로보틱스 10이다. 저평가받는 두산밥캣 주식을 이미 고평가된 로보틱스 주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납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 지분 약 37%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지주회사가 에너빌리티를 통해 ‘캐시카우’인 밥캣에 미치는 실질 지배력은 약 14%로 보지만, 두산로보틱스를 통한 실질 지배력은 42%로 더 강해진다고 분석한다.

지배구조로 인한 불가피한 소액주주의 피해라고 보기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박 회장 등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이 사안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와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명분도 여기에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 더포럼에서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상장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올해 초부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K-밸류업’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때다. 그동안 미국 시장이나 선진국 시장, 신흥 시장과 비교해 국내 주식 시장은 암울한 침체기를 버티어 왔다.

이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K-밸류업에 대한 시장 기대는 남달랐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면서도, 투자자들이 보다 정확한 투자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이익 가치의 공정한 배분’이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직후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도 이미 신뢰를 회복할 수준인지 짚어봐야 한다. 두산밥캣 주요 외국계 투자사인 미국 사모펀드 대표는 “날강도 짓”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도 잘 나가던 두산밥캣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숫자 계산이 뻔한 주판을 둔 두산그룹와 경영진의 대응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유효하다.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지 20일 여만인 지난 2일 ‘기업가치 제고’ 의지를 담은 주주 서한을 보내 ‘소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정정신고서를 요구하는 등 제동을 걸 움직임이 보인 이후라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결국 ‘뒤늦은 소통’이 아쉽다는 반응이다.

2024년 8월 5일, 한국 주식시장은 4년 5개월 만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하는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K-밸류업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두산그룹이 진심 어린 밸류업을 통해 주주환원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이유이자 우리의 현주소다.

이승욱 기자 gun2023@hanyangeconomy.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