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2024. 8. 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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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보기]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출판 편집자들에게 업무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을 물어보면, 열 명 중 대여섯 명은 보도자료(news release) 작성이라고 할 것이다. 그간 만나온 편집자 중 상당수가 보도자료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글쓰기가 어려워서일 수도 있지만 힘들게 제작한 신간이 어떤 매체에도 소개되지 않을 거란 두려움도 깔려있다. 지면은 제한되어 있는데, 매월 발간되는 신간 종수는 5000종이 넘다보니 그 와중에 기자의 선택을 받아 뉴스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2000년대 이후 학술계간지 발간소식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닌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출판 편집자들 역시 국회의원 보좌관, 기업홍보실, 대학 관계자들이 그러하듯 언론에 잘 노출되도록 보도자료 작성요령을 학습하고, 인맥 쌓기와 접대를 비롯해 더욱 정교한 형태의 홍보 전략을 수립한다.

해마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 즐겨 나오는 기사가 올해의 설 용돈은 얼마가 적당한가라는 것이다. 작년에도 모 보험회사가 발표한 것이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되었다. 부모님 용돈으로 30만원을 드릴 거라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 36.2%로 가장 많았고, 50만원을 드린다는 이들도 23.5%에 달했으며, 자녀나 조카들 세뱃돈의 경우 초등학생 이하는 3만원, 중학생은 5만원, 고등학생 및 대학생은 10만원이란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생산되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정보의 출처는 대개 금융, 증권, 보험회사가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였고, 기사 마지막에는 으레 자녀나 조카의 세뱃돈은 미래를 위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라는 조언이 담긴다. 과연 이것은 뉴스일까? 따지고 보면 별점 평가의 원조 ‘미쉐린가이드’ 역시 타이어 제조업체가 정교하게 만든 기업홍보자료다.

대니얼 J.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에서 뉴스 릴리즈의 “릴리즈란 ‘나눠준다(handout)’는 뜻인데, 이 말은 원래 가정집에서 거지에게 상한 음식을 나눠줄 때 사용되는 말”이라며, 언론이 정치인과 기업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의존해 생산하는 뉴스를 ‘상한 음식’에 빗대고 있다. 그는 백악관 언론브리핑, 유력 정치인 기자회견, 기업체 홍보 이벤트 등을 예로 들어 언론이 실제 사건이나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를 찾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시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준 사건을 관행적으로 보도하는 현상에 대해 비판하며, 이런 것을 ‘가짜 사건(pseudo-event)’이라고 불렀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들고, 그 과정 자체도 어려우며 진실을 알린다한들 대중의 호응을 받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언론은 받아쓰기에 나선다.

얼마 전 방송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자칭 어용지식인을 표방하는 유시민 작가와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유튜브 시대의 언론’ 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누가 더 내 마음에 드는 말을 했고, 누가 더 논리적이었는가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은 레거시 미디어를 대표했고, 다른 한 사람은 뉴미디어의 대표로 출연해 각각 상대 미디어가 지닌 뉴스 생산의 공정성과 선택의 편향성에 대해 비판했다. 디지털 뉴미디어가 출현하기 이전 시대를 살았던 대니얼 J. 부어스틴은 “많은 기자들이 매카시를 싫어하면서도 그를 돕고 있었다. 기자들은 매카시의 말도 공평하게 다뤄줘야 하는 ‘평등한 객관성’의 희생양”이었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곧이어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매카시와 기자들은 조작된 같은 상품을 가지고 함께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셈”이었다고 말했다.

언론 역시 산업이란 사실에 주목한다면, 레거시든 디지털이든 이들은 유력 정치인의 암살이나 내전 같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도 스스로 뉴스라는 상품을 찾아내 생산하는 노동자들이지만, 동시에 무엇이 뉴스가 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권력자들이다. 한 사람은 현직 언론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최근 주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활동하지만, 뉴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동일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과연 뉴스의 소비자, 유튜브 구독자 이전에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원하는 것이 언론의 편향성일까? 오늘날 우리 언론이 대중에게 비난받아야 할 까닭이 있다면, 그것은 편향성이나 선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짜 뉴스를 찾아 보도하는 과정에서만 축적될 수 있는 신뢰의 부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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