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행복' '공정'…올림픽이 일깨워준 것들

황재훈 2024. 8. 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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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혼성단체전 동메달 (파리=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유도 혼성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꺾고 동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들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8.3 hama@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재훈 논설위원 = 파리올림픽에서의 한국 선수단 선전이 놀랍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선수단이지만 팀코리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다. 지금까지 여러 종목에서 금맥을 캐냈지만, 지난 주말 밤 열린 독일과의 유도 혼성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은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 중 하나다.

2024 파리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7월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2024 파리하계올림픽대회 결단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7.9 yatoya@yna.co.kr

단체전 6개 체급 가운데 남자 73㎏급과 여자 70㎏급 출전 선수가 없는 한국은 처음부터 체급 공백과 싸워야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여줬다. 스코어 3-3 동점 속 골든스코어 경기로 갈라진 승부에서 추첨으로 출전하게 된 대표팀 '맏형' 안바울은 체격과 체력 열세에도 극적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가 뇌리에 더 각인된 것은 승부가 갈린 뒤 모습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100㎏ 넘는 선수들까지 어린아이보다 더 해맑은 웃음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기뻐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그 어느 순간보다도 더 행복하고 순수한 맑은 웃음을 목격했다.

한국 혼성 유도 대표팀 '승리의 찰칵' (파리=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유도 혼성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4-3으로 꺾어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믹스드존에서 승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사진은 취재진의 요청으로 선수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2024.8.4 [공동 취재] hkmpooh@yna.co.kr

올림픽 경기를 보면 금메달 딴 선수 못지않게, 아니 때때론 그보다 더 기쁜 표정으로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환호하는 경우를 본다.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웃음이 더 밝아 보인 경우도 많다. 미국 심리학자 빅토리아 메드벡(Medvec) 연구팀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연구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메달 확정 때와 시상식 표정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동메달 수상자들이 은메달 수상자들보다 훨씬 행복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뻐하는 정도에 따라 1∼10점 사이로 선수들의 표정에 점수를 매긴 결과 은메달을 딴 선수의 표정 점수는 4.8점, 동메달 선수들은 7.1점으로 분석됐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격의 순간 (파리=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프랑스의 리자 바벨랭이 자신의 동메달에 눈물의 입맞춤을 하고 있다. 2024.8.4 hwayoung7@yna.co.kr

은메달을 딴 선수는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아쉽다는 식의 사고를 많이 하지만, 동메달 선수들은 노메달에 그친 4위 이하 선수와 비교하며 흡족해하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설명됐다. 상대적 행복감은 은메달보다 동메달을 땄을 때 더욱 크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인 셈이다. 자신을 누구와 비교하느냐를 두고 벌어진 '대조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기쁨은 절대적인 성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 있다. 결국 누구와 비교하느냐, 어떤 방향에서 비교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행복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돈을 벌었지만 기대보다 더 적었다면 오히려 실망하고, 돈을 잃었지만, 두려워했던 것보다 적게 잃었을 때 상대적인 안도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양궁 여자단체전 (파리=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7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 마련된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전훈영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2024.7.29 hama@yna.co.kr

이번 파리올림픽에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 5개를 싹쓸이한 한국 양궁 대표팀의 대업도 빛났다. 한국 여자 양궁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36년간 올림픽 단체전에서 10회 연속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새로운 역사를 쓴 양궁대표팀의 눈부신 기록은 공정한 선발, 과학적 훈련, 기업의 지원 삼박자가 어우러져 나온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이 중 눈길이 가는 것은 '공정'과 '투명'이다. 학연·지연 등 파벌은 물론 과거의 수상 경력 등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오로지 실력으로만 경쟁해 대표팀을 선발한 것이 첫 번째 원동력으로 꼽힌다.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은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Ⅹ)-공정성과 갈등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9∼75세 남녀 3천95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우리 사회는 공정한 편'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4.9%에 그쳤고, 나머지 65.1%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 양궁대표팀은 '공정'이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공정한 사회가 될 때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도 증명해줬다.

여의도 뒤덮은 먹구름 7월 5일 국회 깃발이 먹구름 낀 여의도 하늘 아래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고, 서로 혐오하고 증오하는 한국의 현실 정치가 파생시킨 극단적 갈등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정치 성향이 다르면 친구·지인과의 술자리를 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도 33.0%에 달했다. 이런 갈등을 더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지속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100년 만의 올림픽 축하 레이저 내뿜는 파리 에펠탑 (파리=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지난달 2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레이저쇼가 펼쳐지고 있다. 2024.7.27 hkmpooh@yna.co.kr

동메달을 따고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인간이란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주관적인 행복감, 가치 매김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안을 관조하고 인식하는 태도를 조금만 유연하게 가진다면 한국 사회의 깊어진 갈등도 한결 잘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역지사지로, 동일 사안을 이쪽저쪽에서 두루 바라본다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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