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의 꿈 ‘오텔로’ 분하는 이용훈...“유럽서 차별당한 나와 비슷”

임석규 기자 2024. 8. 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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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오페라하우스·예술의전당 협업
베르디 오페라 18~25일 국내 공연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에 오텔로 역으로 출연하는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 예술의전당 제공

“오텔로는 테너들에게 꿈의 배역이죠.”

테너 이용훈(51)은 5일 서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모든 테너가 꿈꾸지만, 꿈이 있다고 모두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라고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런던 로열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밀라노 라스칼라 오페라 등 세계 최정상 극장을 누비는 ‘월드 클래스’ 테너에게도 오텔로 배역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하듯 어렵고 도전적인 작품”이라고도 했다. 이용훈은 18~25일 예술의전당이 선보이는 ‘오텔로’에서 주역으로 나선다. 지난해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오페라 출연이다.

‘오텔로’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이 원작. 베네치아 총사령관 오텔로는 데스데모나와 결혼하고 카시오를 부관으로 임명한다. 부관 자리를 놓친 이아고는 복수를 노리며 오텔로에게 카시오와 데스데모나 사이를 의심하도록 덫을 놓는다. 끝내 데스데모나의 목을 조른 오텔로는 모든 것이 음모였음을 깨닫고 뒤늦게 가슴을 치며 단검으로 자신을 찌른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에 나오는 오텔로와 아내 데스데모나. 예술의전당 제공

이 작품은 베르디(1813~1901)가 74살 만년에 만든 걸작이다. 전작 ‘아이다’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내놓았다. 의심과 질투에 무너진 사랑이 증오와 파멸로 치달으면서 빚어지는 비극을 극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베르디가 동갑내기 작곡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이전 작품들과 확연히 달라진 웅장하고 화려한 관현악도 일품이다.

이 작품을 해독하는 중요한 열쇠는 오텔로에 깃든 열등감이다. 북아프리카 출신 무어인(아랍계 이슬람교도) 오텔로는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승승장구해 전쟁 영웅이 됐지만, 여전히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이다.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를 향한 오텔로의 끝없는 의심과 질투도 열등감에서 출발했다. 이용훈은 “오텔로는 강한 전사처럼 보이지만 연약하고 소심하며 열등감으로 가득한 내면을 지니고 있어 이를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에 오텔로 역으로 출연하는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 예술의전당 제공

서구 오페라 무대에서 동양인으로서 차별을 겪은 이용훈에게 오텔로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유럽 오페라 극장에 데뷔한 많은 동양인 성악가가 오텔로와 비슷한 감정이었을 겁니다.” 이용훈은 데뷔 초기 시절 경험을 털어놨다.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 주역으로 데뷔했는데도 첫 2주간은 리허설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더군요. 호텔 방에서 혼자 연습해야 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2년 전 예술의전당이 국내 오페라 무대 출연을 타진하자, 그가 먼저 ‘오텔로’를 하자고 제안했을 정도다.

‘투란도트’ 칼라프 역을 110차례 넘게 맡은 이용훈이지만 오텔로 역은 이번이 세 번째에 불과하다. 그만큼 까다로운 배역이란 얘기다. 오텔로 역을 427회나 했다는 기록이 있는 이탈리아의 전설적 테너 마리오 델모나코(1915~1982)가 그의 롤모델. 이용훈은 “델모나코 등 오텔로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고 표현하는지 놀라게 된다”며 “무조건 드라마틱한 테너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오텔로의 아픔과 고뇌, 질투와 사랑 등 모든 감정을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페라 ‘오텔라’에 출연하는 데스데모나 역의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왼쪽부터), 오텔로 역의 테너 이용훈, 지휘자 카를로 리치, 오텔로 역의 테너 테오도르 일린카이, 이아고 역의 바리톤 니콜로즈 라그빌라바, 데스데모나 역의 소프라노 홍주영. 예술의전당 제공

이번 작품은 지난해 ‘노르마’에 이어 예술의전당이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와 협업해 만든 두 번째 오페라다. 로열오페라하우스의 무대 세트와 의상, 소품들을 그대로 옮겨온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키스 위너가 2017년 올린 프로덕션 버전이다. 이용훈 외에 테오도르 일린카이(오텔로), 소프라노 흐라추이 바센츠·홍주영(데스데모나), 바리톤 마르코 브라토냐·니콜로즈 라그빌라바(이아고) 등이 출연한다.

웨일스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낸 오페라 지휘계의 거장 카를로 리치(64)가 국립심포니를 지휘한다. 리치는 간담회에서 “음표 하나하나가 드라마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상당히 중요한 작품”이라며 “막이 오르자마자 첫 20분 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는 음악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그는 1막 도입부를 “페라리를 타고 시속 100마일(160㎞)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라고 비유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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