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팬데믹, 인플루엔자가 가장 위협…병원체 후보 3배 늘었다

이정아 기자 2024. 8. 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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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바이러스, 세균 등 30여 종 선정
코로나바이러스군 전체, 천연두바이러스도 포함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0일 '병원체 우선순위: 전염병과 팬데믹 연구 준비를 위한 과학적 프레임워크' 보고서를 통해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만한 위험 후보 30여 가지를 선정했다./픽사베이

세계 보건 전문가들이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어 다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가장 유력한 병원체라고 지목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농장에서 젖소와 사람들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코로나19처럼 바이러스가 종간(種間)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30일 ‘병원체 우선순위: 전염병과 팬데믹 연구 준비를 위한 과학적 프레임워크’ 보고서를 통해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만한 위험 후보 30여 종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A형 독감을 일으키는 A형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뎅기 바이러스, 원숭이두창(엠폭스)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 바이러스와 함께 콜레라균, 이질균, 폐렴균 등 세균들도 목록에 새로 추가됐다.

H5N1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입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사진(주황색)./CDC, 미국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팬데믹 유력 후보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WHO가 선정한 50국 전문가 200여 명은 바이러스와 세균 등 병원체 1652종을 2년 동안 평가했다. 어떤 병원체가 코로나19처럼 세계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일으킬 잠재력을 가졌는지 고려한 것이다. 이 목록에 속한 병원체들은 전 세계로 확산될 만큼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심각한 인명 피해를 일으킬 만큼 독성이 강하다. 또한 치료법과 백신 기술도 제한적이다. WHO는 이 목록을 활용하면 세계 보건당국과 기업들이 치료법과 백신, 진단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2017~2018년 평가는 12종을 선정했다. 이번 평가 결과는 그때보다 약 3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을 일으킬 가장 강력한 후보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꼽는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유전물질이 DNA(디옥시리보핵산)보다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RNA(리보핵산)이어서 돌연변이가 잦다. 그만큼 전파력이 크고 이전에 개발한 백신이 있더라도 새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번 목록에서도 조류인플루엔자(AI) 같은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7종이나 포함됐다. 인간을 주로 감염시키는 H1형 뿐 아니라 최근 미국 젖소 농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H5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포함됐다. 특히 고병원성 AI인 H5N1가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H5N1 바이러스는 주로 조류를 감염시키는데,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가 각각 5형, 1형이다. HA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인체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여럿 감염시키며 두 단백질의 형태를 바꾸는 쪽으로 진화한다.

지난 3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H5N1이 미국 텍사스 농장의 젖소에 전파된 사례가 처음 확인됐다. 지난달 24일까지 13개주 농장 168곳에서 젖소가 H5N1에 감염됐다. 젖소 농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4명도 오염된 젖 짜는 기계를 통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바이러스(노란색)가 인체 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모습을 찍은 주사전자현미경 사진./NIAID

◇코로나바이러스군, 천연두바이러스도 여전히 위협

코로나19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일으켰던 코로나바이러스군 전체도 이번 목록에 포함됐다. 이전에는 메르스 바이러스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각각 포함됐으나 이들이 속한 전체 바이러스군이 포함되진 않았다. 그만큼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변이가 나타나 팬데믹을 일으킬 위험이 커졌다는 얘기다.

또한 원숭이 두창을 일으키는 엠폭스 바이러스와, 이미 자연에서 사라진 것으로 분류됐던 천연두바이러스도 포함됐다. 천연두는 1980년대 근절된 이후 더 이상 백신 접종이 이뤄지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지금은 천연두에 대한 집단면역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만약 천연두가 다시 출현한다면 팬데믹이 일어날 위험이 큰 것으로 평가됐다. 닐리카 말라비지 스리랑카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대 면역학·분자의학과 교수는 “천연두바이러스가 생화학 테러 무기로 사용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쥐가 사람에게 옮기는 니파 바이러스도 추가됐다. 1998년 말레이시아의 니파에서는 100여 명이 니파 바이러스에 옮아 뇌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박쥐가 사람과 접촉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니파 바이러스 역시 전파 위험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현재 니파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치료제는 없다.

나오미 포레스터소토 영국 퍼브라이트 연구소 박사는 “이번 목록에 포함된 병원체 대부분이 현재 특정 지역에 국한돼 있다”면서도 “하지만 언제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실제로 가장 위험한 곳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말라비지 교수는 “기후변화와 산림 벌채, 도시화, 해외여행 증가 등 원인으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전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늘고 있다”며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를 고려해 팬데믹 후보 병원체 목록을 정기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WHO(2024), https://www.who.int/publications/m/item/pathogens-prioritization-a-scientific-framework-for-epidemic-and-pandemic-research-prepare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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