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누명 쓰고 자결… 모든 게 변한 북한 ‘8월 종파 사건’
‘8월 종파사건’(8월 전원회의 사건)은 북한 역사상 유례없는 권력투쟁이었다. 전작 <북한 체제의 기원>(2018), <고백하는 사람들>(2020)로 인상적인 북한사 대중서를 펴내온 역사학자 김재웅은 이 사건이 오늘날 북한 유일 체제가 확립되는 결정적 계기이자 남북분단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1956년 8월30일 개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전후해 벌어진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과 조선노동당 지도부가 공개 비판을 받은 사건을 가리킨다. <예고된 쿠데타, 8월 종파사건>(푸른역사 펴냄)은 이를 북한 내부의 민주화 투쟁으로 규정한다. ‘종파’라는 용어는 김일성이 경쟁자들에게 들씌운 낙인이자 북한 지도부가 역사적 해석과 평가를 독점하고 비판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프레임이었다. 오기섭·박헌영·허가이·박일우·최창익 등 반대 세력은 인정받는 정치인이자 신망 높은 간부들이었지만 ‘종파 행위’ 혐의로 숙청됐다.
사실 사건의 중심에는 주소련 북한대사 이상조 등 40대 초반의 소장 그룹이 있었다. 특히 혁명가이자 사건의 주역 이상조는 소련 외무성을 상대로 필사적인 외교 활동을 벌여 수많은 문서를 영구보존하도록 해 이 사건을 역사가 심판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상조는 “혁명가로서 진리를 위해 죽음을 택할지언정, 아첨과 굴종의 길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김일성 개인 숭배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독재를 공고화하는 만악의 근원으로 보았고 김일성 그룹이 민족해방운동의 영예를 독식해 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역사 등 다른 항일투쟁사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격분했다.
사건을 기점으로 북한 지도부는 충성도가 낮은 이들을 싸잡아 적발하는 공포정치를 펼쳐나갔다. ‘반혁명분자 청산운동’은 북한 전역으로 확산했고 1958년 말부터 반년 정도 자수자만 9만여 명, 적발자는 1만여 명에 이르렀다. 혐의자들은 사생활, 연애관계, 가정생활, 가족관계까지 낱낱이 파헤쳐졌다. 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도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고 미국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혐의와 같은 숱한 누명을 썼고 수감 도중 자결하고 말았다.
저자는 이 사건에 연루된 관련자들을 전원 소환해 행적을 쫓아 사건을 재검토한다. 숨 가쁘게 물고 물리는 인연과 배신, 반전의 기록 속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가 펼쳐진다. 일제강점기 ‘마르크스걸’로 유명했던 허정숙의 안타까운 개인사와 함께 그가 전남편이자 옛 동지인 최창익을 배신하고 비판하게 된 배경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등장해 ‘북한사 대중서’로서 읽는 맛을 더한다. 652쪽, 3만3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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