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가하고, 콧물 날리고, 여름잠까지…야생동물의 피서법

김지숙 기자 2024. 8. 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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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2022년 미국 뉴욕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납작 엎드린 다람쥐의 모습이 여럿 관찰되며 화제가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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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올해 들어 온열 질환을 앓는 사람이 1500여 명이 넘고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밀집 사육되는 농장동물들도 수십만 마리가 폐사했다고 하는데요, 야생동물들은 이러한 극심한 더위를 어떻게 나고 있는 걸까요? 야생동물들만의 비법이 있나요?

A. 올여름은 5월 중순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더위로 많은 사람과 동물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뙤약볕을 피할 실내 공간이나 선풍기·에어컨 등 더위를 식힐 장비라도 있지만, 동물들은 그마저도 없는 상황입니다.

야생동물은 그래도 오랜 세월 야생에 적응하며 살아왔으니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을 법도 한데, 기록적인 폭염에는 불가항력이었던 걸까요. 지난 5월 멕시코에서는 한낮 기온이 45도까지 오르면서 고함원숭이(짖는원숭이) 140여 마리가 심각한 탈수 증세·열사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고온 현상이 나비, 개구리, 고슴도치부터 물고기, 새, 토끼까지 많은 동물의 생태와 행동, 겉모습, 개체 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죠. 그런 가운데 더위에 대처하는 몇몇 동물들의 기상천외한 피서법은 이들의 강한 생명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

2022년 미국 뉴욕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납작 엎드린 다람쥐의 모습이 관찰되며 화제가 됐다. 뉴욕시 공원여가과 제공

2022년 8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등 도심 곳곳에서는 다람쥐가 배를 땅바닥에 납작 붙인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이 모습을 본 뉴욕 시민들은 다람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우려하면서 다람쥐의 독특한 행동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기 시작했는데요, 알고 보니 다람쥐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 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람쥐의 행동을 연구 중인 샬럿 데비츠 미네소타대 박사과정생은 다람쥐의 ‘개구리 자세’가 더위를 식히기 위한 행동이라고 미국 시엔엔에 설명했습니다. 그는 “다람쥐는 땀을 배출해도 체온을 많이 잃지 않기 때문에 더운 날 그늘진 콘크리트나 도로에 가능한 한 많은 신체 표면을 밀착시키면서 열을 식히는 것”이라며 “도시 지역에 사는 다람쥐는 더위를 식힐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할 확률이 시골에 사는 다람쥐에 견줘 더 높다”고 말했습니다. 더운 날 개나 고양이들도 뒷다리를 쭉 뻗고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꽤나 효과적인 방법 같습니다.

‘개구리 자세’ 이외에도 야생동물들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더위를 피하고 있었는데요, 가장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가진 동물은 아무래도 황새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21년 스페인 엑스트레마두라대 연구진의 논문을 보면, 황새들은 몸이 과열되면 다리에 똥을 배설해서 열을 식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리에 배설물을 묻히면 사람이 땀을 흘리면서 체온을 조절하는 것처럼 배설물의 액체가 증발하면서 열을 식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황새뿐 아니라 콘도르, 얼가니새 등 다른 새들보다 상대적으로 다리가 긴 종들에게서 관찰된다고 합니다.

열을 식히기 위해 배설한 흔적으로 다리가 히끄무레하게 변색된 여러 황새들의 모습. 다리는 흰색으로 변했지만 발 부분은 짙은 색을 유지하고 있는 아시아양모황새(a)와 홍대머리황새(b)와 달리 아프리카대머리황새(c)는 다리와 발까지 모두 흰색으로 변했다. 훌리안 카베요 베르겔/엑스트레마두라대 제공

액체의 기화 현상을 통해 열을 식히는 행동은 다른 체액을 이용해서도 이뤄지는데요, 바로 침과 콧물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유대류 가운데서 가장 큰 종인 붉은캥거루는 호주 내륙의 뜨거운 기온을 이겨내기 위해 모세혈관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앞발을 지속적으로 핥아 체온을 낮춥니다. 지난해 호주 컬틴대 연구에서는 짧은가시두더지가 주둥이 끝 비강에 점액 거품을 불어서 콧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열을 식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괴상한’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코끼리는 큰 귀를 부채 삼아 펄럭이면서 체온을 낮추고, 토끼는 모세혈관이 모여있는 기다란 귀에 혈액을 집중시켜 열을 배출합니다. 넓적부리도요, 가마우지, 올빼미, 비둘기 등 일부 조류는 입을 벌리고 명관(조류의 발음기관)을 빠르게 진동시키면서 열을 배출하기도 하죠. 또 익히 알고 있듯 하마는 물속에 장시간 머물고, 엘크는 진흙탕에 몸을 담그면서 더위를 피합니다.

또 겨울에 추위를 피하며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아예 ‘여름잠’을 택하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호주와 남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강과 호수에 사는 폐어는 건기인 8~12월 서식지의 물이 거의 다 증발하면 진흙 아래로 50㎝ 정도를 파고들어 우기가 올 때까지 휴지기에 들어갑니다. 찬물을 좋아하는 까나리도 수온이 15도 이상이 되면 모래 속에서 4~5개월의 긴 여름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끼리의 열화상 사진. 코끼리의 귀는 몸보다 체온이 더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조너선 골드버그/더 컨버세이션 제공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폐어는 건기가 오면 진흙땅 속으로 파고들어 여름잠을 잔다. 위키피디아코먼스

야생동물들이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더위를 피하고 있다지만, 야생동물의 타고난 회복력만으로 지구온난화를 이겨낼 수는 없을 것이란 경고가 나옵니다. 스웨덴 룬드대 조너선 골드버그 박사후연구원은 지난 6월 전문가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야생동물들이 얼마나 빠르게 이상고온에 적응할 것인가는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있다”며 “캥거루가 팔뚝을 핥으며 열을 식히는 모습은 자연의 독창성을 보여주지만,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미 일부 조류가 열 발산이 쉽도록 몸집이 작아지고, 부리와 날개가 길어지는 신체적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동물의 진화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인용 자료

The Conversation: How animals are changing to cope with stronger heatwaves

CNN: Pooping, splooting, spitting: How wild animals beat the heat

Cool Green Science: 8 Ways Wild Animals Beat the Heat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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