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조상 추모비에 ‘메달’ 바친 허미미…“다음엔 금메달 가지고 올게요”
여자 유도 57㎏급 은·동메달 들고
대구 군위군 ‘순국 기적비’ 찾아
“할아버지, 메달 따 왔어요. 다음에는 금메달 갖고 올게요.”
2024 파리올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동메달을 딴 유도 대표팀 허미미가 6일 오전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허석 의사(1985~1920)의 순국 기적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높게 솟은 비석에는 ‘효의공 허석 의사 순국 기적비’라고 적혀 있었다. 허 선수의 현조부인(5대조) 허 의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이다. 1984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기적비 앞에는 허 선수가 파리에서 따낸 은메달과 동메달이 놓였다.
허 선수는 “할아버지께 메달을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운동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꼭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오겠다”고 말했다.
가슴에 태극마크가 달린 올림픽 단체복을 입고 묘소에 도착한 허 선수는 사람들의 환호에 일일이 화답했다. 셀카를 요청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연신 미소를 지었다.
허 선수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중학교 땐 일본 유도의 최대 유망주로 꼽혔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갖고 살아왔지만 할머니가 2021년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귀화했다. 허 선수는 같은 교포 선수인 김지수 선수가 속한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는데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인 허무부씨가 허석 의사 증손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앞서 허 선수는 지난 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할머니의 뜻을 따라) 한국 (국적) 선택을 잘 한 것 같다”라며 “아쉽게 은메달을 땄지만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라고 말했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점두 경북도체육회장은 “허 선수가 프랑스에서 보여준 활약은 허석 선생의 긍지를 현대에도 보여주는 것 같았다”며 “경북 체육인으로서 유도를 통해 대한민국 위상과 명예를 드높일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경상북도 차원에서도 4년 뒤 LA 올림픽에서 더욱 선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미미는 2022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단 뒤 국제대회마다 굵직한 성과를 냈다. 2024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여자 57㎏급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그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기대한 대로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세계 1위 크리스티 데구치(캐나다)에게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패배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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