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원장 강조도 무색…'불성실'로 도배된 의결권 공시
형식적 기재 97%…절반은 의결권 세부지침 공개도 안해
금융감독원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적용 첫 해 자산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 공시실태가 공개됐다.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나서 자산운용사의 책임있는 의결권 행사를 강조해왔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공시를 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법령상 의결권을 반드시 행사해야 하는데도 별 다른 이유 없이 행사하지 않거나, 형식적 기재, 심지어 내부지침에 반하는 의결권 행사 사례도 수두룩 했다.
금감원은 6일 펀드 의결권 행사·공시 현황 점검 결과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작년 10월 금감원이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전면 개정한 이후 진행한 첫 실태조사 결과다. 올해 1분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행사한 의결권 내역을 한국거래소에 공시한 274개사(2만7813건)를 점검했다.
자본시장법상 특정 종목을 펀드 수탁고의 5% 또는 10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매년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직전년 4월 1일부터 그해 3월 31일까지 의결권 행사한 내역과 내부지침, 소유주식수, 법인과의 관계 등을 매년 4월30일 한꺼번에 모아 보고한다.
이 조항에 따라 작년 말 기준 국내 운용사들이 보유한 주식 19만3136종목(중복 종목 포함) 가운데 의결권 공시대상 법인은 9349종목으로 4.8%에 해당한다. 운용사들은 이중 59%에 대해서만 실제 의결권을 행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 10월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참고 사례도 많이 넣었고, 올해 3월 간담회까지 열어 성실한 의결권 행사를 당부했음에도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며 "따라서 이번에는 사례나 비율을 공개해 시장에 알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 기재 현황 △행사 내부 지침공시 현황 △공시 서식 작성 기준 준수 여부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 등 네 가지 부분을 집중점검했다.
우선 점검 대상 265개사(96.7%)가 의결권 행사 사유나 불행사 사유를 부실하게 기재했다. 구체적 판단 근거를 기재하지 않고, '주주총회 영향 미미' 또는 '주주권 침해 없음'으로 형식적인 사유를 써둔 것이다.
의결권 행사에 관한 지침을 아예 공개하지 않는 곳이 121개사(44.2%), 지침을 공개했더라도 개정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지 않은 운용사도 102개사(37.2%)에 달했다. 운용사가 의결권을 적절하게 행사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기본정책과 안건별 세부지침을 공시해야 하지만,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금감원이 발표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한 이번 점검 대상인 274개 운용사 모두 거래소 공시 서식을 최소 1개 이상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의안명에 '사외이사 A씨를 선임한다'고 공시해야 하지만 '임원 선임의 건'으로 간략하게 기재했다. 운용사와 대상법인 간 관계를 적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의결권 행사 공시를 했더라도 내부지침과 다르게 행사하는 등 불성실 공시로 분류된 안건도 상당수였다. 금감원이 의결권 행사 적정성 판단을 위해 1582개 안건을 점검한 결과, 1124건(71%)는 행사 사유 기재 자체가 미흡해 불성실 여부를 판단하기 조차 어려운 사례였다. 이외에 내부지침과 맞지 않은 불성실 행사 사례도 114건(7.3%)있었다.
예를 들어, B사는 사외이사 수를 이사 총수의 2분의 1 이상으로 하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B사는 자산총계 2조원 이상 상장사로서 이사회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꾸려야 했다. 그러나 C자산운용은 B사 정관 변경안의 법규 위반소지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이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처럼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 곳곳에서 불성실하고 형식적인 공시가 이뤄지고 있지만 불성실 공시에 대해 별도의 제재 조치는 없다. 다만, 금감원은 이번 점검결과에 드러난 미흡사항을 각 운용사에 전달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오는 8일 운용사 CEO 간담회를 개최해 이번 실태조사 내용을 전달하고 가이드라인 내용을 재차 강조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자산운용업계가 스튜어드십코드에 적극적으로 가입하고 실천하도록 지속적으로 독려하는 등 운용사가 기업가치 제고 및 지배구조 개선 등에 기여하는 성실한 수탁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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