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에 '오픈런'…20대인 그가 바라는 것

CBS노컷뉴스 강예은 인턴기자 2024. 8. 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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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일기' 연재중인 20대 여성
"아이는 계산할 수 없는 행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가지려"

20대 중반,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29)는 남편과함께 여행을 다니고 게임을 하며 느긋하게 신혼을 즐겼다. 그런 신혼이 익숙해지고 지루해질 무렵 두 사람은 아이를 갖기로했다.

그러나 아직 소식은 없다.

산부인과에서는 그에게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다고 했다. 여러 개의 작은 난포가 동시에 자라기 때문에 충분히 성숙한 난포가 없어 배란이 어렵다는 거였다. 결국 자연 임신은 어렵다는 얘기였다. 더욱이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 배란일 예측도 어려워 기약 없이 배란테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지난 1년 동안 배란 유도제, 난포 주사(배란 촉진 주사), 나팔관 조영술을 거쳐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중이지만 변한 건 없다. 임신이 안 되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암울함만 추가됐을 뿐이다.

매달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긴 터널을 걷는 기분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난임일기'라는 만화를 연재중이다. 닉네임 윌비윌비(will be will be)에서는 그의 결연함이 묻어난다.

그의 인스타툰에는 배란테스트기 사용기, 배란초음파 검사, 배란 유도제 먹는 법, 난임 병원 정하는 기준 등 난임 부부에게 도움이 될 법한 정보가 담겨있다. 친구의 임신 소식, 임신 준비 데일리룩, 등 난임부부로서 겪는 사소한 일상과 솔직한 감정도 녹아있다.

그는 난임을 '긴긴 터널을 걷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임신에대한 기대와 실망을 만화로 그려내는 과정은 그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됐다. 어디다 말할 곳 없었던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돼 주었다. 사내 부부라 난임 사실을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부담이었고, 부모님에게 걱정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번 인터뷰도 익명으로 진행했다.)

20대의 난임이라는 고민은 친구들로부터도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따라서 그의 인스타툰은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다른 난임 부부들과 소통하는 창구도 돼 줬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위로를 얻었다. 특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표출하고 기록하면서는 스스로 더 단단해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는 인공 수정까지 시도했다. 현재는 시험관 시술을 앞두고 있다.

인공적으로 정자를 투입해 자궁 내 주입한 후 수정시키는 것이 인공 수정이고, 난자와 정자 모두를 채취해 체외에서 수정시키는 것이 시험관 시술이다. 난소 기능이 떨어져있거나 나팔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 혹은 정자의 질이 안 좋은 경우 자연 수정이 어려워 시험관을 시행해야 한다. 이 두가지 방법에 앞서 배란 유도제 및 난포주사로 과배란을 유도해 수정시키는 방식도 했으나 허사였다.

그 때 마다 적지 않은 비용도 지출해야했다.

배란 유도제 및 난포주사는 1회 10만원 미만, 인공수정은 회당 30~60만원. 시험관 시술은 1회당 150~400만원에 육박한다. 개인에 따라 처방약과 횟수가 천차만별이다. 물론, 난임진단서를 받으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만 44세 이하는 신선배아 110만원, 동결배아 50만원, 인공수정 30만원. 만 45세 이상은 신선배아 90만원, 동결배아 40만원, 인공수정 20만원을 받는다. 지원횟수는 인공수정, 시험관 상관없이 총 22회로 지자체마다 다르다.

그는 돈 때문에 아이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처음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막연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예전부터 아이를 좋아했고, 결혼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하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막연함은 '아이를 통해 가정이 완성된다'는 생각에 확신으로 변했다. 둘뿐이던 삶이 더 다채로워질 거라고, 부모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간절함이 큰만큼 '난임'이라는 벽도 높았다. 직장인이 호르몬 변화에 맞춰 병원을 매번 찾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행법상 1년에 3일 난임 휴가를 쓸 수 있지만 남편과 같은 부서인지라, 회사 내 난임 사실이 퍼지게 될까봐 매번 개인 연차를 소비하고 있었다. 다행히 출근 시간을 자유롭게 변경하는 유연근무 덕도 봤다.

저출생 국가인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난임 병원은 새벽부터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출근 시간 전 난임 병원으로 '오픈런'을 해야 출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말에는 대기 인원들로 앉을 곳이 없는 때도 많다고 한다. 1시간 정도 대기도 기본이다.

병원 가서 꾸준히 질 초음파와 난소 모니터링을 해야 하기에 이들이 병원을 찾는 건 일주일에 2~3회 가량이다. 배란 전까지 난포 성장을 관찰하고 약을 조절하며 배란일을 예측해야 한다. 따라서 생리 이후부터 배란 전까지는 기약도 없이 병원에 '출석'해야 한다. 따라서 1년 3회 (연 1회 유급, 2회 무급 난임) 휴가로는 턱도 없다.
 
윌비윌비 부부

아이란 '계산으로 낳을 수 없는 깊이 있는 행복'

그렇다면, 남들은 다 애 낳기 싫어 문제라는 이 저출생 시대에, 이들은 왜 이토록 아이가 간절한 걸까?

그는 부모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화목한 집안에서 부모님이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란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키우며 힘든 점도 물론 있을 테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다 행복이었다는 부모님의 말대로 아이가 태어나면 찾아올 행복을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담담하게 이성적,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아이 낳는 건 현대사회에서 손해라는 것을 인정했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 봐도 애를 낳는 건 손해가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산할 수 없는 행복감, 예상할 수 없는 삶의 깊이감을 더해주는 건 출산과 육아뿐일 것 같았다.

만약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았다면 그래도 아이를 원했을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저희가 아이를 가지고 싶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이에요."

기꺼이 낳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도 어려운 환경에서 그들을 키웠고, 이렇게 잘 자라났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아이가 계속 생기지 않는다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입양까지도 생각한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여생을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육아 휴가자의 동료들에게 국가가 수당 지급해야"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 즈음, 그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국가가 장기적 차원에서 저출생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당부였다.

"현재 임신과 출산에만 정책이 집중되어 있으니 '금전적 지원'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애를 낳겠다고 결심하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회비용을 계산해야 해요. 왜 사람들이 애 낳는 데 몇 십억이 든다고 하는지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사교육은 잘 키우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이 맡길 곳이 학원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교육은 절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거나 기관을 늘리는 단순한 접근에 그쳐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근무 시간이 자유롭게 조정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출산·육아 휴직으로 결원이 발생한 곳에는 국가 차원에서 일을 분담하는 사람들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하는 등 국가가 개입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가 계산기를 두드려 아이를 낳지 않는 세태에서 아이는 계산할 수 없는 행복이라며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부모가 되는 과정이라 믿는 20대 부부의 목소리는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으려는 그들의 용기는 우리 사회를 받치는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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