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무시하는 검찰, 선거로 쫓아낼 수 있다면?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김건희 여사를 수사하는 검찰이 김 여사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경호처 건물로 출장 조사를 나가고 휴대전화도 제출한 상태로 조사를 진행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특혜'라는 응답이 63.9%에 이르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보안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응답은 28.2%그쳤습니다.(여론조사 꽃, 7월26~27일 전국 성인 남녀 1003명 대상 전화면접,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조차도 “검찰이 수사 방식을 정하는 데 더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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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눈높이’ 조롱하는 검찰
그러나 검찰은 ‘국민 눈높이’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합니다. 아예 조롱하는 듯합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검찰로 하여금 국민 눈높이에 맞추도록, 국민 눈치를 좀 보도록 강제할 방법은 없을까요?
현행 제도에서 부당한 검찰권 행사를 응징할 방법은 징계와 탄핵밖에 없습니다. 징계는 ‘제 식구 봐주기’로 인해 유명무실합니다. 탄핵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한 안동완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5월30일)된 데서 보듯 보수적인 헌재의 벽을 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헌재의 눈높이도 국민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국민 뜻을 거스른 검사를 국민의 손으로 직접 응징하는 제도는 어떨까요? 선거와 소환투표를 통해서 말입니다. 민주주의 원리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적용한 이 제도를 실제 도입한 나라가 한 곳 있습니다. 미국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미국의 검사 선거(소환)제도를 통해 검찰에 대한 민주적 시민통제의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검찰개혁을 위한 상상력을 펼치는 데 참고 자료가 됐으면 합니다.
권력 편에 선 검사를 낙선운동으로 응징한 시민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45개 주에서 검사를 선거로 뽑습니다. 선거는 각 주의 광역자치단체인 카운티 단위로 이뤄집니다. 우리로 치면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선출하는 셈입니다. 이 제도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시카고와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는 인구 527만여명(2020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인구 1001만여명)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선거구입니다. 카운티 검사는 700여명의 부검사(2021년 기준)를 지휘합니다. 이곳에서 2016년 역동적인 검사 선거가 펼쳐졌습니다.
2014년 10월20일 시카고에서 17살 흑인 소년 라콴 맥도널드가 경찰이 쏜 16발의 총탄을 맞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당시 맥도널드가 이상행동을 보였고 검문을 거부한 채 경찰관에게 달려드는 상황이었다며, 정당한 총격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경찰 차량의 블랙박스에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1년여 뒤인 2015년 11월24일에야 법원의 명령으로 동영상이 공개됐고, 총격 당시 맥도널드는 경찰관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걸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총을 쏜 경찰관 제이슨 반 다이크는 그날 즉시 일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을 13개월이나 감춘 데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책임자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 시위가 몇주 동안 이어졌습니다. 시카고 경찰국장 개리 매카시는 2015년 12월1일 경질됐고, 이어 경찰 감독권자인 시카고 시장과 가해 경찰관 기소를 미뤄온 카운티 검사가 비난의 타깃이 됐습니다. 이 가운데 람 에마뉴엘 시장은 그해 동영상이 공개되기 이전에 치러진 선거에서 이미 재선에 성공한 상태였습니다. 반면 아니타 알바레스 검사는 이듬해 재선에 도전할 예정이었습니다. 다가오는 검사 선거는 화약고가 됐습니다.
시카고 지역의 흑인과 청년 단체가 주축이 돼 알바레스 검사 낙선을 위한 ‘#ByeAnita’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수많은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맥도널드 사건으로 법집행에서의 인종차별과 불공정, 공권력 남용, 인권 무시 등 형사사법체계의 문제점이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이를 개선하라는 요구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갔습니다.
알바레스 검사의 대항마로 출마한 킴 폭스 변호사는 검찰의 관행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공약으로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경찰의 총격으로 시민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 독립적인 특별검사가 수사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흑인·빈곤층 범죄를 실형 일변도로 처벌함으로써 전과자를 양산하는 문제를 개선하고, 경미한 범죄의 경우 정신치료, 사회봉사명령,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훈련 등 대안적 처벌 방식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검사 운동’이 제시하는 형사사법제도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입니다.(이 운동에 대해선 다음번 이야기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2016년 3월 쿡 카운티 검사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민주당의 예비선거가 열렸습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 민주당 예비선거가 본선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비선거 결과는 폭스 후보 58%, 알바레스 후보 29%, 제3후보 13%였습니다. 폭스 후보는 같은해 11월 본선거에서 72%의 득표율로 카운티 검사에 선출됐습니다. 이 선거는 검찰권 행사 방식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비판과 참여로 ‘다른 색깔’의 검사를 선출한 개가로 주목받았습니다.
직선제 도입 배경: “나쁜 검사를 쫓아낼 방법이 없다”
미국에서 검사 선거제도가 도입된 것은 권력기관인 검찰을 시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민주적 자치 이념의 발현이었습니다.
지난번 이야기(2회)에서 소개했듯 미국 건국 초기 검사는 법원에 소속돼 재량권도 없이 행정적 업무를 처리하는 별볼일 없는 직책이었습니다. 심지어 파트타임으로 고용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반 시민이 형사재판을 청구(기소)하는 사인소추 제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점차 권한이 늘어났습니다. 중범죄의 경우 기소에 검사가 필수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거나, 기소를 중단할 권한(nolle prosequi)을 부여받았습니다. 기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권한이 늘어나면 남용도 뒤따르는 게 인간사의 진리입니다. 당시 검사의 임명권은 주지사 또는 주의회가 가지고 있었는데, 검사들이 임명권자와 짬짜미해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하는 일이 횡행했습니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주지사와 가까운 사람은 불기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처벌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났습니다. 주지사가 처벌을 원하는 사람에 대해선 유죄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일도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겪는 현실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점차 권한이 강화되는 검사가 임명권을 쥔 권력의 뜻에 복무하는 경향이 드러나자 검사를 시민들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습니다. 주지사가 검찰권까지 한손에 쥐는 권력집중을 방치해선 안 되며, 검사가 검찰권의 원천인 시민의 뜻을 배반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다음은 당시 선거제도 도입을 주장한 이들이 들었던 논거의 일부입니다.
“국민이 통치당하지 않고 스스로 통치하기 위해선 모든 주요 공직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방도가 없으면 공직자는 권위주의화되고 국민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된다.”
“임명된 검사가 자신의 직위를 사악한 목적에 이용하곤 한다.”
“나쁜 판검사를 쫓아낼 실속있는 제도가 없다. 탄핵소추는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여론이 반영돼 19세기 중후반에 걸쳐 이뤄진 각 주의 헌법 개정에서 검사 선거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들여다보기
―판사는 어떻게 선출하나?
미국은 검사뿐 아니라 판사도 선거로 뽑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19세기 중후반 각 주의 헌법 개정 당시 판사 선거제도 도입이 주된 쟁점이었고, 검사 선거제도는 여기에 얹혀가는 쟁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판사의 경우 이후 다수 주에서 임명제로 되돌아갔습니다.
현재 22개 주에서만 판사 선거가 치러집니다. 8개 주는 정당 공천 방식, 13개 주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방식입니다. 미시간주에서는 각 정당이 후보 선정을 위한 경선을 치르되 본선에서는 정당 공천 없이 선거를 치르는 혼합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밖의 28개 주는 임명제이지만 방식은 약간씩 다릅니다. 21개 주에서는 별도의 위원회가 판사 후보자 추천 명단을 제시하면 이 가운데 주지사가 선택해 임명합니다. 나머지 7개 주 가운데 5개 주는 주지사가 상원의회 또는 관련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판사를 임명하고, 2개 주는 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의회가 투표를 실시해 다수 득표자가 판사로 임명되는 방식입니다.
―검사 선출·임명 방식은?
검사 선거는 45개 주 가운데 38개 주에서 정당 공천 방식으로, 나머지 주에서는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가장 작은 주인 로드아일랜드는 지방검찰청을 따로 두지 않고 검찰총장이 직접 검찰 업무를 수행합니다. 검찰총장은 선거로 뽑습니다. 나머지 4개 주는 알래스카·코네티컷·델라웨어·뉴저지입니다. 코네티컷주는 법원이 검사를 임명해오다 1984년 헌법 개정으로 사법정의위원회(Criminal Justic Commission)를 창설해 검사를 그 아래 두고 있습니다. 이 위원회가 검사를 임명하며,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독립적인 지위를 갖습니다. 뉴저지주는 주지사가 상원의회 동의를 얻어 검사를 임명합니다. 알래스카와 델라웨어주는 법무부 장관이 검사를 임명합니다.
선출되는 검사를 부르는 명칭은 주에 따라 District Attorney, State’s Attorney, Prosecuting Attorney 등으로 다양합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지방검찰청 검사장 역할이고, 그 아래에서 Assistant Attorney, Deputy Attorney로 불리는 부검사들이 우리나라의 검사 역할을 합니다.
그럼, 선거로 뽑은 검사들은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받들었을까요?
미국 검사 선거제도의 한계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미국판 검찰개혁운동인 ‘진보적 검사 운동’,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등을 다음번 이야기에서 이어가겠습니다. 8월20일 뵙겠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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