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교육·수련병원 여건 안된다면?…美·日 사례보니
USC 의대, 제휴병원 계약해지로 60명 줄여
日 동경대 분쟁 확산 이듬해 신입생 안뽑아
정부 "의대생 집단유급 따른 대입변경 불가"
[서울=뉴시스] 백영미 김정현 기자 =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내년 입학 정원이 늘어나는 의과 대학들에 대한 강화된 평가 기준을 공개한 후 일각에서 의평원의 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의대의 정원이 감축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미국·일본 등 해외에선 의대의 교육 또는 수련 병원의 여건이 되지 않아 신입생을 감축한 사례가 있다.
6일 의료계와 외신에 따르면 국가별로 의대 입학 자격이나 교육 기간, 수련 병원 운영 체계 등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일본 등에서는 의대나 수련 병원의 교육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의대 입학 정원을 줄이거나 아예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는 지난 2021년 지역에서 의대 졸업생(인턴)들이 수련 받을 자리가 부족해지자 의대 입학 정원을 150명에서 140명으로 줄였다. 의대들이 의료 전문가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인턴 수련을 강화하면서 자리가 제한돼 있는 병원에 이들을 배치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게 대학 측 입장이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학교(USC) Keck 의대 입학 정원은 한 해 180명 정도이지만 Keck 의대와 기존 제휴를 맺은 병원(수련병원) 중 한 곳의 계약이 해지되면서 최근 120명 가량만 모집했다. 제휴병원장 간 갈등이 계약 해지의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A 교수는 "USC Keck 의대는 졸업생들을 수련시키는 병원 가운데 한 곳이 줄었다는 이유로 의대 정원을 60명 감축했다"면서 "수련 환경을 고려해 (의대 측이)막대한 등록금 수입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keck 의대 등록금은 연간 7만890달러(한화 약 9698만 원)에 달한다.
일본 동경대의 경우 1968년 의학부에서 시작된 인턴 처우 문제 등을 둘러싼 분쟁이 전체 학부로 번지면서 전교생을 유급시키고 이듬해 입시를 시행하지 않았던 선례가 있다.
당시 의대생들이 투쟁 현장에 없었던 학생에 대한 징계에 반발해 동경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고, 동경대 총장이 경찰에 기동대 투입을 요청해 농성을 강제로 해산 시켰다. 이후 학생들의 반발이 확산하면서 캠퍼스 전체가 초토화 되다시피 했고 수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는 "초기 동경대는 어떻게든지 유급을 막고 이듬해 입시를 시행해 보려 했지만, 문부성(한국의 교육부)은 원칙적인 입장을 강조한 편이었다"면서 "그러다 결국 연말이 넘어가면서 원칙론이 승리했고 이듬해 입시가 시행되지 않게 돼 결국 1969년 동경대 전체의 신입생이 없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문부성이 교육 대상 학생이 일시에 두 배로 늘어나는 데 따른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운 데다 대학 측이 학생들을 수용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워 결국 입시 중지를 결정하게 됐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에선 의대생들이 급격한 의대 증원(1497명)으로 학습권이 침해 받을 것이라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선 의대생들이 유급될 경우 기존의 두 배가 넘는 7500여 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해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이 어려워지는 만큼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한국의학교육학회 이사)는 "의대생이 적정 수를 넘어가 급격히 늘어나면 학습 생태계를 흔들 우려가 있다"면서 "의대 교육은 마네킹 등을 활용한 각종 실습, 표준화된 환자, 팀 기반 학습(TBL), 가상현실(VR) 시뮬레이션 교육, 컴퓨터나 태블릿 같은 교육 기자재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대에선 방대한 의학 지식을 개별적으로 공부하기 힘들어 고독한 천재는 있을 수 없다"면서 "의대 열풍으로 우수한 인적 자원이 몰리지만 의대생이 적정 수를 넘어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족보(학습자료)를 공유하는 문화에서 제외되면 학습이 부진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의대생 집단 유급으로 내년에 의대 입시 시행은 불가능하다"면서 "충북대와 강원대는 (의대생들을)유급해도 강의할 교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국립대병원 몇 곳은 부도 위기에 몰려 있고 복수의 서울 대학병원들도 위험하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편법을 써 수업을 듣지도 않은 학생들을 강제로 승급시키는 것은 학문과 교육의 전당인 대학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고, 더욱이 의대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편법으로 교육을 형해화시켜선 안 된다"면서 "현재로선 의대생 전원 유급과 내년도 의대 입시 중지가 해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현행법상 집단 유급은 '학생 모집정지 등 행정처분'의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대입전형시행계획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 장관이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 적용은 모집 인원 변동으로 인한 입시 혼란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9월 초 수시모집 일반전형 등이 시작되는 만큼 입시 인원·일정 변경은 수험생의 반발과 대규모 소송이 예상되고 이 경우 가처분 신청 등으로 인한 전형 일정 지연 등과 여론 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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