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가락 동작 금기시는 현재의 풍토”…‘사이버 괴롭힘’ 면죄부 준 경찰[플랫]
게임업체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 ‘집게손가락’을 그려넣어 ‘남성혐오’를 했다면서 해당 장면을 그리지도 않은 하청업체 직원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모욕했던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이전에도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렸으므로 이용자들이 피해자를 비판한 건 논리적으로 인정된다’는 취지로 불송치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이 남초 커뮤니티가 제기하는 여성 혐오 음모론에 동조해 사실상 2차 가해를 하고 혐오 범죄를 용인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 서초경찰서는 ‘스튜디오 뿌리’의 일러스트레이터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에 대한 게시글을 올린 사람들을 정보통신망법(명예훼손), 성폭력범죄처벌법(통신매체이용음란)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지난달 24일 불송치(각하) 결정했다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송치 결정서를 보면 경찰은 “비록 고소인(A씨)이 관련 그림 담당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나 고소인이 소속된 회사는 집게손가락 동작과 관련해 사과문을 게시한 바 있다”며 “고소인 또한 이전에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트위터 글을 게시한 사실이 있는 바, 피의자들이 고소인을 대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이 공개되자 일부 이용자들은 한 캐릭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하는 등 남성혐오 표현이 포함됐다고 항의했다. 이들은 “넥슨 하청업체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해당 그림을 그렸다”면서 온라인에 A씨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혐오 표현을 올렸다.
그러나 경향신문 취재결과 문제가 된 그림은 A씨가 아닌 40대 남성 애니메이터가 담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넥슨 측은 별다른 사실관계 확인 없이 A씨가 소속된 하청업체 측에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하청업체에 사과를 압박했다. 업계에선 “페미니즘 혐오 정서에 편승해 업계 내 사상검증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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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뿌리의 ‘집게손가락 음모론’ 설명회, 유저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경찰은 불송치 결정서에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혐오 논리를 그대로 실었다. 경찰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집게손가락 동작’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라면서 “피의자들의 글은 전체적으로 A씨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경찰은 ‘부적절한 행위’는 ‘자신의 작업물 등에 몰래 집게손가락 표현을 넣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어 “피의자들이 트위터(현 X)를 통해 고소인에 (가해진)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는 상당하나 트위터는 미국 소재 기업”이라며 “(해외기업의 수사) 협조 범위는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에 한하고, 형사사법 공조 또한 본건 범죄 특성상 그 회신을 기대하기 어려워 압수수색 영장 신청 등 수사를 계속할 실익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와 시민사회는 “국가기관이 혐오와 차별을 승인해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피해자를 지원해 온 한국게임소비자협회는 이날 “해당 통지서에 기재된 수사결과는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경찰이 여성 피해자를 보호할 의지가 없음을 시사함으로써 사실상 경찰이 지켜야 할 기본 이념을 망각하고 사회적 문제를 방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경찰은 성인지 관점과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에 접근해야 하는데 이 사안을 충분히 진지하게 조사하지 않은 것 같다”며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당한 피해자들은 기업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니 개인이 형사고소·고발로 소송에 나서는 것인데 소극적 수사+로 인해 피해자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데 위축될까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마다 언어습관이 다르다 보니 (피고소된 41개 댓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할 만큼의 언행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트위터에 자료제공 협조 요청을 의뢰하려고 했으나 서울경찰청으로부터 해외기업공조 대상이 아니라는 회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 김송이 기자 songyi@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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