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저리대출’ 여전히 높은 문턱…“피해자 인정받아도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더라”
전세사기를 당한 A씨(30)는 지난달 기존 청년전용 버팀목 대출(연2.3%)를 이율이 낮은 전세사기 피해자 전용 버팀목 대출(연 1.2%)로 ‘갈아타기’(대환)하려고 했지만 은행에서 거절당했다. 전세사기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 받은 후 세 번째 거절이다.
거절 사유는 매번 달랐다. 최초 신청 때는 ‘같은 버팀목 대출 간 대환은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번째는 새 전셋집을 구해 신규 대출을 받으려 했으나 ‘기존 주택보다 보증금이 커서 안된다’고 했다. 이후 같은 버팀목 대출 간 대환도 허용하겠다는 정부 보완책이 나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A씨는 직장 문제로 피해 주택에 임차권등기를 하고 이사를 한 상태였다. 이번에는 ‘피해 주택에 계속 거주하고 있어야 대환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A씨는 이러한 과정을 ‘도돌이표’에 비유했다. 그는 6일 “민사소송에 형사소송까지 거쳐 간신히 피해자 인정을 받았지만 대출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이루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 2개월이 지났지만 전세사기 피해자 전용 저리 전세대출 이용 실적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대출 요건을 완화했지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연 1.2~2.7% 금리로 최대 4억원까지 받을 수 있는 저리 전세대출 이용자는 전체 피해자 1만8810명 중 2194명(11.7%)에 그쳤다. 사실상 피해자 10명 중 1명 정도만 지원을 받은 셈이다.
저리대출 신청건수(2324명)도 전체 피해자의 12.3%로 저조했다. 지역별 편차도 컸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가장 많은 서울(4892명)은 19.2%로 전국 평균(11.7%)을 웃돌았지만 주요 피해지역인 인천(9.2%)과 대전(5.5%)은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전남에서는 피해자 624명 중 13명(2.1%), 충북에서는 148명 중 4명(2.7%)만 저리대출을 이용했다.
전세피해 임차인을 대상으로 한 버팀목 저리대출은 지난해 6월 시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신설됐다. 하지만 까다로운 요건 탓에 실적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출시때부터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0월 저리 대환대출 대상을 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에서 1억3000만원, 보증금 한도는 기존 3억원에서 5억원으로 늘렸다. 대환대출 한도도 최대 2억4000만원에서 4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달에는 같은 버팀목 대출 간 저리대출을 허용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피해자들은 그럼에도 사각지대가 여전하다고 말한다. 대환대출은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주거 이전 시 받을 수 있는 신규대출은 다시 전세를 들어가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 임차권등기 후 부모 집으로 들어가거나 전세를 피해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 피해자들은 사실상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
박 의원은 “정부의 정책 설계 결함과 운영상 저조 문제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보다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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