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모호한 인류무형유산… 환갑잔치·장구춤·널뛰기 중국이 등재 ‘논란’[10문10답]

김인구 기자 2024. 8. 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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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사도광산 계기로 본 세계유산
유적지·건축물부터 김장·연등회까지 유·무형 다양
한국, 석굴암 등 세계유산 16건… 인류무형유산도 22건
일본 ‘사도광산’ 전시에 ‘조선인 강제노동’ 얘기 쏙 빼
중국, 아리랑·그네타기 등 등재하며 노골적 동북공정
태국 - 캄보디아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도 영유권 갈등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부유선광장의 모습. 일본의 근대유산인 부유선광장은 세계유산 구역에서 제외됐다. 일본은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 관련 사실을 전시했으나, 강제성에 대한 언급이 없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주 폐막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의 사도광산을 포함해 총 24건이 새로 등재됐다. 이로써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952건, 자연유산 231건, 복합유산 40건 등 총 1223건으로 늘어났다. 한국 정부는 그간 사도광산의 등재에 반대해왔으나,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관련 전시물의 설치와 추도식 개최 등을 약속하면서 등재 결정에 동의했다. 그러나 사도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련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실에 강제노역 등 ‘강제성’을 명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세계유산 등재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종종 논란을 낳는다. 특히 지리적 경계가 불분명한 인류무형문화유산에는 분쟁의 여지가 있는 유산이 제법 많다. 사도광산 등재를 계기로 그간의 논란을 정리했다.

1. 세계유산은 어떻게 분류하며, 지정되면 어떤 장단점이 있나

유네스코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은 유네스코가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문화적·자연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지정한 유산을 뜻한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구분되며, 유네스코는 세계유산과 별도로 세계기록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도 지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적지’라 불리는 장소나 건축물, 조각이나 회화, 기념물 등이 문화유산이 된다. 역사적·예술적으로 탁월하고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자연유산은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들로부터 이룩된 자연의 기념물로서 미학적, 과학적으로 탁월한 가치를 지닌 자연 유적지다. 복합유산은 언급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세계유산기금 등을 통해 유산 보호를 위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등재에 따른 국가 브랜드 신장과 관광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특정 건축물이나 지역이 세계유산이 되면 강제로 개발이 금지될 수 있는 건 단점이다.

2. 한국의 세계유산은

지난해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가야의 역사와 문명을 보여주는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한국이 보유한 ‘세계유산’은 총 16건이 됐다. 한국유네스코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은 석굴암과 불국사(1995)를 시작으로 종묘(1995), 해인사장경판전(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 유적(2002),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 조선왕릉(2009),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 남한산성(2014), 백제역사유적지구(2015),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 한국의 서원(2019), 한국의 갯벌(2021), 가야고분군(2023)까지 세계유산에 등재시켰다. 이와 함께, 한국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연등회(2020)와 제주 해녀문화(2016),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2013),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 등 22건을 등재했다. 훈민정음 해례본(1997) 등 세계기록유산도 18건이나 된다.

3. 국내에서 등재된 인류무형문화유산 중 논란이 된 것들은

국가별로 비슷한 문화가 존재하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특히 등재와 관련한 논란이 심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강릉단오제와 불꽃놀이 등이다.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다. 매년 음력 4월 5일 제례에 사용할 술을 빚는 것을 시작으로 5월 7일까지 한 달 정도 열린다. 단오굿, 관노가면극 등이 진행되며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2005년 세계무형유산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에 앞서 중국의 반발이 심했다. 중국과 한국의 단오가 음력 5월 5일로 날짜가 같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정·신청하자 중국 내에서는 ‘한국이 단오를 빼앗아가려 한다’는 여론이 생겼고, 결국 중국의 단오절도 2009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됐다.

최근 논란이 됐던 불꽃놀이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가 그간 금지해오던 춘제 불꽃놀이를 다시 허용하기로 한 것을 두고 중국의 한 매체가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 중 27%가 ‘한국이 불꽃놀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해 중국의 문화를 빼앗으려 한다’는 의견을 내 논란이 됐다. 한국의 국가유산청이 불꽃놀이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치, 한복, 부채춤 등에 대해서도 중국의 억지 주장이 이어지곤 했다.

4.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인데 중국에서 등재된 것은 무엇이 있나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인데 중국이 따로 등재한 것은 농악무, 그네타기 등 17건에 달한다. 주로 중국 내 조선족 문화를 통해 진행됐다. 중국은 옌볜 조선족 자치주 등을 내세워 고구려 고분군과 농악무를 자국 문화재로 지정하고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나아가 환갑잔치, 장구춤, 널뛰기 등을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국가무형문화재)에 포함시켰다. ‘조선족 농악무’ ‘조선족 널뛰기’ ‘추천(그네타기)’ 등 조선족의 전통 민속놀이라는 명목이다. 그러다가 2011년에는 한민족 민요인 아리랑까지 자국내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가야금예술과 판소리도 들어 있다.

5. 유독 중국과 등재 관련 이해충돌이 많은 배경은

이는 오랫동안 추진돼온 중국의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중화민족주의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동북공정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 내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중화민족의 일부임을 주장한 것이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등장하면서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 논란이 일었다. 중국이 하다 하다 한복까지 자국 문화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3월엔 백두산이 중국명인 ‘창바이산’으로 세계지질공원에 선정되면서 또 논란이 들끓었다. 백두산은 4분의 1이 북한, 4분의 3이 중국 땅에 해당하며 다만 천지는 약 54.5%가 북한 쪽이다. 이에 동북공정에 꾸준히 맞서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백두산 명칭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백두산 지역을 영토로 삼았던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왜곡하는 ‘동북공정’이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 중 관노가면극(맨 위)과 씨름 경기 장면(가운데). 마지막은 백두산 천지. 중국은 백두산을 ‘창바이산’으로 세계지질공원에 단독 등재시켰다. 연합뉴스 뉴시스

6. 유네스코 공동 등재 사례는

유네스코는 최근 공동체 간 교류와 협력 과정을 등재 기준으로 삼고 다국가의 공동 등재를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18년 남북이 공동으로 등재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씨름’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북이 함께 등재한 첫 사례인 ‘씨름’에 대해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당시 “남북 씨름이 연행과 전승 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평가기구가 남북 씨름을 모두 등재 권고한 점을 고려해 전례에 없던 개별 신청 유산의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태권도’의 유네스코 남북 공동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코리아(KOREA) 태권도 유네스코 추진단이 공식 출범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는 2010년 ‘매사냥’이 아랍에미리트 주도로 등재될 때 11개국 가운데 하나로 참여했고 2015년 ‘줄다리기’를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등 4개국과 공동 등재하기도 했다.

7. 북한 유네스코 개별 등재 사례는

‘씨름’과 같이 남북 공동으로 등재된 문화유산도 있는 반면 북한이 단독으로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한 예도 있다. 그중 ‘아리랑’은 북한의 첫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난 2014년 최종 인정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리랑 민요’로 등재된 북한의 아리랑은 평양, 평안남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북도, 자강도 지역의 아리랑을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이에 앞서 지난 2012년 밀양, 정선, 진도 등 3대 아리랑이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라는 이름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이 외에도 북한이 현재까지 무형문화유산을 개별 등재한 사례는 ‘김치 담그기’(2015)와 ‘평양랭면풍습’(2022) 등 총 3건이다. 특히 2022년 ‘평양냉면’이 등재된 것에 대해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예로부터 생활의 다양한 계기마다 민족 음식인 평양냉면을 즐겨 해먹었으며 오늘도 이 풍습은 연면히 이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풍습은 사람들의 식생활을 보다 풍만하고 즐겁게 해주고 사회에 낭만을 안겨준다”고 평했다.

8. 사도광산처럼 논란이 지속 중인 세계유산(인류유형문화유산) 사례는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과 2015년 등재된 일본의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외에도 분쟁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외국 사례도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선에 위치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대표적이다. 캄보디아 프레아 비헤아르 지역에 있는 크메르 제국 시대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으로 2008년 캄보디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이후 사원 지역은 캄보디아 영토로 지정됐으나 태국의 영유권 주장으로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캄보디아의 영유권을 인정한 뒤에도 현재까지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이 영토를 접하고 있는 ‘백두산’도 논란의 대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정식 등재 이전 ‘세계유산 잠정목록’ 절차를 밟는데 북한 측은 1989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시킨 뒤 잠정목록 등재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2006년 백두산을 ‘창바이산’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단독 등재를 시도한바 있으며 올해 3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했다.

9.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은

매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 중 전쟁(내전), 테러, 반달리즘(문화유산 훼손행위), 난개발, 기후변화, 오버투어리즘 등의 문제로 문화유산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될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고 해당 국가에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이번 회의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내 ‘힐라리온 수도원’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긴급 등재됐다. 또한 위원회는 지난해 목록에 신규·재지정된 ‘오데사 역사 지구’, ‘르비우 역사지구’(1998년 최초 지정), ‘키이우의 성 소피아 대성당과 수도원 건물들, 키이우 페체르스크 라브라’(1990년 최초 지정) 등의 상황을 논의하며 문화유산의 훼손을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의 자제를 러시아 측에 촉구했다. 한편 해당 국가의 지속적 노력으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 2007년 야생동물 밀렵과 댐 건설 등의 이유로 목록에 추가됐던 ‘니오콜로코바 국립공원’에 대해 멸종위기종 보호 노력이 인정된다며 17년 만에 제외했다.

10. 차기위원회는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는 2025년 6∼7월에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불가리아의 회의 주최는 1985년 소피아에서 열린 뒤 40년 만이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유산의 등재 심사와 결정의 권한을 가진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돼 올해부터 활동 중이다. 임기는 오는 2027년까지 계속된다. 또한 올해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제47차 회의 부의장국으로 선출됐다. 부의장국은 5개 지역 그룹별 한 나라를 선출하는 것으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그룹을 대표하게 된다. 이외 그룹에서는 벨기에, 멕시코, 잠비아, 카타르가 부의장국으로 참여한다. 한편 한국은 한반도 선사 문화의 정수로 여겨지는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반구천 암각화는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등재를 준비해 왔다. 등재에 성공하면 한국은 지난해 등재된 ‘가야고분군’을 포함, 총 17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을 보유하게 된다.

김인구·박동미·신재우·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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