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9월에 다시 와요?” 마지막 날 예준이가 물었다 [시선]

신선영 기자 2024. 8. 6. 08: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김예준 군(10)은 홍미영 활동지원사(가명, 57)에게 한글을 배웠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 소속인 홍씨는 지난 2년 7개월 동안 주 6일씩 예준이를 돌봤다.

"장애 아이를 돌볼 때는 기다려주는 게 중요해요." 홍씨 덕분에 예준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었다.

"서사원은 제가 연차나 병가를 가면 대체인력이 투입됐어요. 이용자들에게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죠. 예준이는 주말 돌봄이 필요한데 민간 지원사가 그만둘까 봐 신경이 쓰여요."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 7월31일부로 문을 닫았다. 소속 돌봄 노동자들은 집단 해고됐다. 안정적으로 공공 돌봄 서비스를 받아온 이용자들도 피해를 입었다. 공공 돌봄 기관의 해산으로 돌봄의 공백이 발생했다.
7월30일 오후 김예준 군(10)이 그를 돌봐주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쪽을 바라보며 그네를 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지적장애가 있는 김예준 군(10)은 홍미영 활동지원사(가명, 57)에게 한글을 배웠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 소속인 홍씨는 지난 2년 7개월 동안 주 6일씩 예준이를 돌봤다. 아빠, 할머니와 사는 예준이를 엄마처럼 세심하게 챙겼다. 체육을 좋아하는 예준이를 위해 구청에서 지원하는 검도와 줄넘기 수업도 등록해 매번 데려갔다. “장애 아이를 돌볼 때는 기다려주는 게 중요해요.” 홍씨 덕분에 예준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었다. 무인 계산대를 사용하고, 도로에서는 주변에 차가 있는지 살필 줄 알게 됐다. 하지만 8월1일부터 홍씨를 만날 수 없다. 서사원이 7월31일부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예준이(왼쪽)와 활동지원사 홍씨(오른쪽)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예준이와 활동지원사는 서로에게 칭찬을 할 때마다 엄지 손을 맞댄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4월26일 서울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주도로 ‘서사원 설립 및 운영 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 조례안’이 통과됐다. 5월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바로 다음 날 서울시는 이를 승인했다. 속전속결로 해산한 뒤 ‘6월30일자 희망퇴직 신청’ 문자가 직원들에게 발송됐다. 홍씨도 연락을 받았다. “5월30일에 문자를 받고 당황했어요. 하지만 예준이를 돌볼 민간 선생님이 구해질 때까지 그만둘 순 없었어요.”

​장애인 활동지원사 홍씨(왼쪽)가 주민센터 공부방에서 예준이(오른쪽)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예준이는 홍씨의 도움 아래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서울 성동구 문화체육센터에서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검도 수업을 받는다. ⓒ시사IN 신선영

서사원 직원들에게 해산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2019년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 위해 서울시 출연으로 설립한 서사원은 노인 돌봄, 장애인 활동 지원, 영유아 보육 서비스 등을 제공해왔다. 특히 민간에서 기피하는 이용자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 돌봄을 도맡았다. 비정규·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인 돌봄 노동 시장에서, 정규직으로 월급을 받는 서사원 직원들은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돌봄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고비용 대비 저효율’을 문제 삼으며 정부와 서울시는 계속해서 재정 지원을 줄여나갔다. 10년간 민간기관에서 활동지원사로 근무하다 2019년부터 서사원에서 일한 김정남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 사무국장은 “시급 대신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노동의 결과를 증명해야 했어요. 돌봄 시장의 삼성이라는 비아냥도 들었죠. 효율성보다 안정성이 중요한데도요”라고 말했다.

홍씨의 도움으로 예준이는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챙기고 정리하는 일을 혼자 하게 됐다. ⓒ시사IN 신선영
검도 수업을 받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예준이가 홍씨에게 장난을 걸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신속한 해산 절차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전가됐다. 예준이 아빠는 홍씨에게 서비스 지속을 요청했지만, 민간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맞닥뜨린 홍씨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예준이는 8월1일부터 새 민간 활동지원사를 만난다. “서사원은 제가 연차나 병가를 가면 대체인력이 투입됐어요. 이용자들에게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죠. 예준이는 주말 돌봄이 필요한데 민간 지원사가 그만둘까 봐 신경이 쓰여요.”

홍씨와의 마지막 날, 예준이는 이렇게 물었다. “저는 선생님이랑 영화 본 게 기억에 남아요. 근데 마음속에서 잊어버릴까 봐 걱정돼요. 선생님 9월에 다시 와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본부 입구. ⓒ시사IN 신선영
2019년 첫 입사자들이 교육을 받았던 서울 마포구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본부 사무실에 불이 꺼져 있다. 서사원은 8월까지 사무실을 비우기 위해 청산 작업에 들어갔다. ⓒ시사IN 신선영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