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도 'R의 공포'…뉴욕 갤러리 줄폐업

성수영 2024. 8. 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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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식시장을 강타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미술시장에도 드리우고 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국내 대형 갤러리는 서구권 갤러리와 비교해 공격적인 투자를 지양하기 때문에 폐업까지 하는 곳이 많지 않겠지만, 대신 긴축과 감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미술시장 불황은 앞으로 더 심해지고 미술 관련 일자리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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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우려에 지구촌 미술시장 찬바람
뉴욕 화랑 20곳 1년새 문 닫아
업계 20년 넘는 갤러리도 7곳
대형 갤러리들 구조조정 나서
3년전 호황 때 투자 늘렸다가
손실 눈덩이에 결국 백기 들어
한국 미술계도 긴축·감원 우려
경기 침체 우려에 세계 미술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바젤의 부대 전시. 한경DB


세계 주식시장을 강타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미술시장에도 드리우고 있다. 세계 미술 수도인 미국 뉴욕에서는 업력 20년 이상의 중견 갤러리들이 지난 1년 새 줄줄이 문을 닫았고, 유럽의 세계적인 갤러리들에는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여기에 미국 실물경기 침체 우려와 자산시장 폭락까지 겹쳐 국내 미술시장도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년간 호황 이후 갤러리 줄폐업

6일 미술계에 따르면 뉴욕에서 지난해 8월부터 이달 초까지 문을 닫은 갤러리는 총 20곳으로 집계됐다. 폐업한 갤러리들의 업력은 모두 7년 이상이었다. 이 중 업력이 20년을 넘는 갤러리는 7곳에 달했다. 78년 전통의 말버러갤러리, 53년 업력의 워시번갤러리가 단적인 예다.

한때 멜버러 갤러리는 세계 최고 갤러리 중 하나로 꼽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나오는 멜버러 갤러리 관계자들과 영국 출신의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가장 오른쪽). 사진은 1975년 촬영됐다. © Marlborough Gallery

2021~2022년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은 세계 미술시장은 2023년(650억달러) 전년 대비 총매출이 4% 감소(아트바젤 UBS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하며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선 호황기의 여파로 아트페어 등 미술 관련 행사는 전보다 되레 늘었다. 매출은 급감했는데 부담할 비용은 커진 것이다.

호황기에 규모를 키우고 지점을 늘린 갤러리들의 타격은 더 컸다. 미술계 관계자는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한 갤러리업계 특성상 아트페어 참가를 포기하는 등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러는 사이 손실이 누적되고 시장 전망이 계속 악화해 이를 견디지 못한 갤러리들이 폐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살아남은 곳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유명 갤러리들도 예외는 아니다. 페이스갤러리에서는 고위직들이 짐을 쌌다. 최근 글로벌 및 운영 담당 부사장을 비롯해 주요 보직 인사 3명이 일을 그만뒀다. 데이비드즈워너는 신사업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곳은 웹 개발자 등 온라인 관련 신사업에 투입한 인력 10명을 이달 초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인력의 3%에 해당하는 규모다. 화이트큐브는 지난달 말 경비원 38명을 해고했다.

 한국 미술시장 침체도 깊어지나

미국 실물경기 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며 불황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한국 미술시장의 침체도 심화할 수밖에 없다. 당장 오는 9월 초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프리즈)부터 문제다. 한 갤러리스트는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가 작품을 사들이는 슈퍼 리치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 중 대부분은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 런던’에서 작품을 구입하려 할 것”이라며 “고가 작품 등의 판매가 부진할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화랑가에도 찬바람이 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2021년 598개이던 갤러리 수는 2022년 831개, 2023년 895개로 늘었다. 지난 몇 년 새 미술시장에 뛰어든 사람이 급증했다는 얘기다. 이 중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중·소규모 갤러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경매사와 대형 갤러리도 살림살이를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는 “국내 대형 갤러리는 서구권 갤러리와 비교해 공격적인 투자를 지양하기 때문에 폐업까지 하는 곳이 많지 않겠지만, 대신 긴축과 감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미술시장 불황은 앞으로 더 심해지고 미술 관련 일자리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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