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0년' 허영만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이 롱런 비결"

유영규 기자 2024. 8. 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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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다시 그 바닥으로 들어가냐고 하면 '허영만'이라는 타이틀은 빼고 다른 필명으로 연재해보고 싶어요. 연재나 이야기를 꾸려나갈 때 내가 가진 방법으로 도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렇게 해도 통할까 궁금합니다. 서너 달 정도는 연재할 수 있는 분량이 있어요. 내 멋대로 그린 그림인데 네이버(웹툰) 같은 데서 '어서 오세요'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딱지 맞을 확률이 높죠. 안되면 인스타그램이나 혼자서 해야죠. 인스타그램은 일대일로 독자를 대할 수 있어서 사실 큰 매체보다 독자들과 밀접한 관계에서 할 수 있어요." 50년간 만화를 그린 작가가 생각하는 만화의 매력은 뭘까? "원고지가 하얗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거기에 내 맘대로 그릴 수 있어요.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으니까, 꿈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좋아요. 만화를 그리면서 저는 애같은 어른이 아닌가, 여전히 애이기를 원하는 어른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미술관에서 열리는 만화 전시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끕니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2008년 아르코미술관에서 고우영 회고전이 열린 이후 미술관에서 대규모 만화전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허영만의 만화 예술은 한국 만화의 소재와 주제 의식을 확장했고 철저한 자료 수집과 취재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국 만화사에서 허영만의 위치와 성과를 다시 살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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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 작가

"데뷔한 지 몇 년인지는 문하생 시절도 있으니까 구분을 안 했는데, 50년이라 그러니 세월이 이렇게 오래 갔구나 싶어요. 저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번 기회로 내가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저 자신도 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 만화계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인 허영만(75) 작가가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습니다.

1974년 '집을 찾아서'로 한국일보 신인만화 공모전에 당선된 그는 같은 해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한 만화 '각시탈'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날아라 슈퍼보드', '비트', '타짜', '식객' 등 영상화된 작품들로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전남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오늘(6일) 개막하는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는 허영만의 50년간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그가 우리 만화사에서 이룬 성과와 영향을 돌아보는 전시입니다.

'각시탈'과 '오!한강' 같은 시대상을 품은 만화부터 '미스터 손'(TV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원제), '비트', '타짜', '미스터 Q', '아스팔트 사나이' 등 영상물로 재탄생한 만화, 음식 문화를 소재로 한 '식객'과 작가의 일상을 담은 '만화일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원화와 드로잉, 취재 자료 등으로 소개합니다.

5일 전시장에서 허영만 작가는 50년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을 들었습니다.

"저는 1등 할 때가 없었어요. 그전에는 이상무 선생이 1등이었고 이상무 선생이 시들하다 싶으니까 이현세 작가가 나와서 제가 1등을 또 못했죠. 하지만 오래 하다 보니 지금까지 남았네요. 비결은 소재에 대한 갈증이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밥 먹다가도 메모하고…. 식당에서도 냅킨에 고추장을 묻혀서 메모하기도 했죠."

작가는 원래 미술대학에 진학해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정 형편으로 꿈을 접었고 오랜 시간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기억납니다. '누가 니(너) 대학교 보내준다더냐'라고요. 저희 집이 멸치어장을 했는데 몇 년간 멸치가 잘 잡히지 않아 코너에 몰려 있을 때였어요. 형도 대학에 가서 나도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니 그럼 만화를 그리자고 생각했어요. 만화도 원래 좋아했고 만화 그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니까요. 그 즉시 만화로 (진로를) 돌렸고 만화 그릴 수 있는 재료만 책가방에 들고 나머지 1년간 학교에 다녔어요. 지금은 아버지께 고맙지만 서른세살 때까지는 학력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사회생활을 할 때 꼭 학력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다행히 만화계에서는 학력을 전혀 따지지 않고 능력만 따져요. 그게 정말 고마워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작가의 작품은 유독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영화와 극장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만들어진 '각시탈'을 비롯해 '미스터 손', '비트'(영화), '타짜'(영화·드라마), '식객'(영화·드라마), '제7구단'(영화 '미스터 고') 등 수많은 작품이 종이를 넘어 TV로, 스크린으로 대중들을 만났습니다.

"제 만화에는 다른 만화에 많이 나오는 슈퍼스타가 없어요. 그냥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어린아이나 어른들이 주인공이에요. 그래서 현실을 중요시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쉽게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작가는 작업 전 꼼꼼하게 취재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도 '타짜'를 그릴 때 화투패를 쥐고 '밑장을 빼는' 손동작을 그린 스케치들처럼 취재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웹툰 회사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전에 내가 잡지에 연재하니까 매달 3∼4권씩 잡지가 집에 오는데 아이들이 그걸 보고 있으면 우리 아내가 '만화 그만 보고 공부하라'고 해요. 아군인지, 적군인지…(웃음). 과거엔 종이 만화가 웹툰과 비슷하게 이야기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웹툰이 너무 커졌어요.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시장이 커진 만큼 작가 위상도 덩달아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내년 고향인 전남 여수에 (가칭) '허영만 만화 기념관' 개관을 준비 중인 작가는 웹툰 작업도 도전을 준비 중입니다.


"어떻게 다시 그 바닥으로 들어가냐고 하면 '허영만'이라는 타이틀은 빼고 다른 필명으로 연재해보고 싶어요. 연재나 이야기를 꾸려나갈 때 내가 가진 방법으로 도전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렇게 해도 통할까 궁금합니다. 서너 달 정도는 연재할 수 있는 분량이 있어요. 내 멋대로 그린 그림인데 네이버(웹툰) 같은 데서 '어서 오세요'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딱지 맞을 확률이 높죠. 안되면 인스타그램이나 혼자서 해야죠. 인스타그램은 일대일로 독자를 대할 수 있어서 사실 큰 매체보다 독자들과 밀접한 관계에서 할 수 있어요."

50년간 만화를 그린 작가가 생각하는 만화의 매력은 뭘까?

"원고지가 하얗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거기에 내 맘대로 그릴 수 있어요.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으니까, 꿈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좋아요. 만화를 그리면서 저는 애같은 어른이 아닌가, 여전히 애이기를 원하는 어른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미술관에서 열리는 만화 전시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끕니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2008년 아르코미술관에서 고우영 회고전이 열린 이후 미술관에서 대규모 만화전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허영만의 만화 예술은 한국 만화의 소재와 주제 의식을 확장했고 철저한 자료 수집과 취재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국 만화사에서 허영만의 위치와 성과를 다시 살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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