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것’ 김민기, 거기에도 그가 있었구나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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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걸어서 4분 남짓.
올해 4월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세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대학가에서 그의 노래가 애창될수록, 김민기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위험인물로 떠올랐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는 그의 조용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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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걸어서 4분 남짓. 대학로 특유의 붉은 건물과 연극 티켓 부스가 늘어선 골목길을 지나 그 소극장으로 간다.
삼광빌딩 건물 옆에 가만하게 솟아 있는 낮은 출입구. 연혁이 적힌 작은 동판이 없다면 이곳이 김덕수 사물놀이 ‘소리굿’, 김광석 라이브 1000회 기념 콘서트,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공연 문화의 못자리가 된 ‘학전(學田)’이었음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이 공간, ‘배움의 터전’을 닮은 이가 세상을 떠났다.
7월21일 김민기 학전 대표가 타계했다. 향년 73.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으나 최근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며 숨을 거두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은 빈소에는 장현성, 박학기 등 학전을 거쳐간 문화예술계 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올해 4월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세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아침이슬’의 작곡가, 정권의 탄압을 받은 저항의 상징, 〈지하철 1호선〉의 제작자, 대학로 문화를 이끈 극단 학전의 대표. 익히 알려진 타이틀 사이사이 ‘뒷것’을 향했던 삶의 경로를 따라가며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거기에도 김민기가 있었구나. 우리 모두 그에게 빚을 졌구나.’
1971년, 스무 살의 김민기는 첫 음반을 발매한다. 그러나 이 레코드는 얼마 안 가 당국으로부터 압수 조치를 당한다. 1972년 봄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노래 부르기를 지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천재 싱어송라이터의 인생을 괴롭힌 각종 금지처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학가에서 그의 노래가 애창될수록, 김민기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위험인물로 떠올랐다.
‘노래와 가사는 끊임없이 수정 지시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한 곳 내 이름을 작사·작곡자로 명기할 수 없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김민기의 친필 노트 중).’
군 제대 후 음악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 그는 인천 부평의 피혁 공장에 일자리를 구한다. 그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새벽마다 공부를 가르쳤다. 당시 소년공이던 곽기종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좋은 말씀도 많이 했어요. ‘꿈은 얻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느끼는 세상을 살아라.’ 거의 5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말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곽씨의 증언을 통해 ‘상록수’가 노동자 부부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쓰인 곡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는 그의 조용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저항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김민기의 노래는 내면을 비춘다.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아침이슬’ 중).” 티끌만큼도 손해 볼 수 없다며 비난의 손가락질이 바삐 오가는 시대에 ‘내 맘 속 설움’에 ‘작은 미소’를 띠는 어른과의 작별이 사무치는 이유다.
7월24일 김민기 대표의 영정이 마지막으로 옛 ‘학전’을 찾았다. 색소폰 연주자 이인권씨가 고인의 곡 ‘아름다운 사람’을 연주했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가족장으로 치르고 싶다는 유족들의 바람에 따라 운구차는 단출하게 장지인 천안공원묘원으로 향했다. 지난 3월15일 33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학전’은 ‘아르코꿈밭극장’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이어간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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