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인정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고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었다. ‘쎄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받자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용민씨 본인 맞으실까요?”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더 커졌다. “아… 네.” 친절한 목소리가 말했다. 8개월 전 배우자 소성욱씨가 김용민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된 건 ‘착오’였다고, 그러니까 등록을 취소해야 한다고. 용민은 당시 필요한 모든 서류를 빠짐없이 제출해 정상적으로 등록한 것이고 지난 8개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항의했지만, 상대는 등록 자체가 단순 실수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불과 몇 시간 전 인터넷에 ‘건보공단, 동성커플을 ‘부부’로 인정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2012년 겨울에 만나 2013년 여름부터 사랑에 빠진 성욱과 용민이 2019년 결혼식을 올린 이야기부터, 직장을 잠시 그만둔 성욱이 용민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동성 커플이 공식적인 행정 절차에서 인정받은 국내 최초의 사례임을 알리는 기사였다. 그러나 해당 기사가 나온 바로 그날 건보공단은 피부양자 등록 취소를 통보했다.
용민은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로그인했다. 자신의 이름 아래 뜨던 성욱의 이름이 없었다. 관계를 적는 칸에 ‘배우자’라고 적혀 있던 세 글자도 사라졌다. “단순한 취소가 아니라, 증발이었어요. 줄만 그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다못해 성욱이 제 배우자로서 8개월간 피부양자였다는 이력이라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흔적도 없었어요. 애초에 소성욱이라는 사람이 저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제 이름만 덩그러니 혼자 있더라고요.” 두 사람이 8년 동안 쌓아온 관계를 없던 일로 만드는 데 전화 한 통이 전부였다. 국가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2020년 2월10일, 성욱과 용민은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문의 글을 남겼다. “저희는 동성 부부라 한국에서는 아직 혼인신고를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동거하고 있고 2019년 결혼식을 올린 사실혼 관계에 있습니다. 저희도 다른 이성 부부들과 똑같이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할 수 있는지요. 가능 여부와 가능하다면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 절차를 알려주세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한번 시도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튿날 짤막한 답변이 달렸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도 고객님의 피부양자로 취득 가능하니 다음과 같이 서류를 제출하셔서 피부양자 취득 신고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뜻밖이었다. 두 사람은 반신반의하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신청했다. 그날 성욱은 용민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이 모든 과정이 정말 담당자의 실수였을까? 성욱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모르겠어요. 저희는 처음부터 동성 부부라는 사실을 밝혔고 각자 ‘남(男)’으로 성별이 기재된 서류도 제출했는데 그걸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쪽에서 잘못한 거겠죠. 차라리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으면 ‘에이, 역시’ 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누군가는 의심하지도 않고 당연히 누리는 권리라는 걸 이렇게 줬다 뺏을 수 있는 건가?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건보공단은 성욱이 지난 8개월 동안 지역가입자가 아닌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어서 덜 냈던 보험료 11만 5560원까지 내라고 했다.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실명과 얼굴을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보나마나 쏟아질 악플보다 커밍아웃 하기 이전처럼 또다시 자기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게 더 숨막혔다.
“첫 공판기일에 재판장이 용민이를 ‘배우자’라고 불렀어요. ‘배우자 김용민씨에게 발언 기회를 주겠다’고요. 법원이 우리의 관계를 존중해주는 건가, 그 호칭 하나에 괜히 뭉클하면서도 내심 기대가 되더라고요.” 그러나 2022년 1월7일,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는 건보공단의 보험료 청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동성 간의 결합이 남녀 간의 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으므로, 둘을 구분하여 취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게 그 이유였다. 아울러 “동성혼 인정 여부는 원칙적으로 입법의 문제”이므로 “아직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해석만으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 간 결합에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라는 말로 재판을 끝맺었다.
소송에 참여했던 성욱의 공동 대리인단은 1심의 판결이 ‘불의타(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을 뜻하는 법조계 용어)’처럼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저희가 청구한 이 소송의 쟁점은 ‘이성 커플에게 적용되는 혜택이 동성 커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게 차별이냐 아니냐’이지, ‘동성혼이 가능하냐 아니냐’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재판부는 이성 커플과 동성 커플이 다르다고만 하고 왜 다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곧바로 쟁점도 아닌 동성혼 가능 여부로 건너뛰었고요. 재판이 끝난 다음에 저희끼리 ‘이상하다, 우리가 참여해온 재판이 맞느냐’는 말까지 주고받았을 정도였어요.” 공동 대리인단 중 한 명인 류민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가 말했다. 비유하자면, 가게에서 동성 커플만 ‘단품 메뉴(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자격)’를 시킬 수 없는 게 차별인지 아닌지 묻자, 법원은 ‘세트 메뉴(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자격을 포함해 결혼한 부부가 누리는 모든 혜택)’를 시킬 수 없는 게 타당하다고 답변을 한 셈이다.
“해외 추세와 비교하면, 사실 반차별 원칙을 두고 다투는 소송은 초보적인 단계예요. 이번처럼 개별 권리(단품 메뉴)에 대한 소송이 쌓이다가 동성혼(세트 메뉴)이 법제화되는 순서로 이어지거든요. 이미 일본이나 홍콩에서는 이런 개별 권리를 동성 커플에게만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판례가 여러 차례 나왔어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성혼을 인정하는 나라가 아닌데도요. 미국이나 유럽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아시아권에서도 한국은 많이 늦은 거죠.” 류민희 변호사가 말했다.
실제로 2018년 홍콩에서 한 여성이 취업 비자로 체류하고 있던 동성 파트너를 피부양자로 등록하려 했으나 이민청이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홍콩 종심법원(한국의 대법원격)은 이민청이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을 다르게 취급한 것이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한 것이라고 판결했다(QT 대 이민청장 사건). 이듬해 홍콩 종심법원은 해외에서 법적으로 결혼한 동성 커플이 이성 커플과 동등하게 고용 및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룽춘퀑 대 국세청장 외 사건).
2021년 일본 변호사연합회(한국의 대한변호사협회 격)는 아예 “지자체가 ‘사실상 혼인관계와 같은 사정에 있는 자’를 해석할 때, 법적 성별이 같은 사람을 제외하지 않도록 법을 평등하게 적용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지 않더라도, 각 지자체와 행정기관이 동성 커플에게 이성 커플과 똑같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규정을 해석하라는 권고였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성욱과 용민, 대리인단은 곧바로 항소했다. 만약 또 지더라도 ‘법원에서 입법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느냐’고 국회를 압박할 수 있는 근거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2심 첫 공판기일에 재판부는 사건의 쟁점이 ‘헌법의 평등 원칙 위반 여부’임을 밝히고, 원고와 피고 모두 해당 쟁점에 맞춰 자료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성욱은 건보공단 대리인단이 재판부의 요구에 맞춰 변론을 펼치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한번은 재판장이 ‘내 질문은 그게 아니다, 피고(건보공단)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근거를 묻고 있는 거다’라고 재차 물을 정도로요.” 결국 재판장은 서면으로라도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이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를 적어 내라고 했으나, 건보공단 대리인단은 끝내 의견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차별을 논리적으로 방어하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류민희 변호사가 말했다.
2023년 2월21일, 서울고등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이승한)는 1심 판결을 뒤집고 건보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부양자 제도의 의미와 목적에 비추어보았을 때 “피고가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한 차별 대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피고가 “차별 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입증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판결의 근거가 됐다. 2심 재판부는 법원의 역할에 대해 1심 재판부와 사뭇 다른 입장을 보이며 판결문을 마무리했다.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건보공단에서 항소했다. 7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가 잡혔다. 하루 전날, 성욱과 용민은 옷장을 뒤져 단정하게 보이면서도 상징을 담은 옷을 준비했다. 성욱은 노란 티셔츠를, 용민은 빨간 티셔츠를 입기로 하고 둘 다 가슴에 무지개색 방패 배지를 달았다. 2013년 12월 혼인신고를 했으나 불수리 통보를 받고 불복 소송을 했던 김조광수 감독-김승환 레인보우 팩토리 대표 커플이 가슴에 단 배지였다.
법정에는 두 사람을 응원하기 위해 폭우를 뚫고 온 방청객이 가득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긴장한 탓인지 잘 들리지 않았던 용민은 혹시 유튜브 중계에 들어가면 자막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꺼냈다. 방청을 오지 못하고 라이브로 재판을 지켜보던 수백 명이 채팅창에 성소수자 상징인 무지개 깃발 이모티콘을 띄우고 있었다. 무지개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자 판결을 듣기도 전에 눈물이 터졌다. 잠시 뒤 옆에 앉아 있던 박한희 변호사가 휘갈겨 쓴 종이를 건넸다. “이겼어요.” 용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3년 차 신혼부부인 두 사람은 4년 동안 법정에서 싸운 끝에 서로 남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이렇게 판결했다. “동성 동반자는 직장가입자와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다. (중략) 피고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가 직장가입자의 동반자로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였기 때문이지 이성 동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가 저출생과 고령화, 다양하게 변화하는 가족 결합 형태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판결문을 출력해 꼼꼼히 정독했다. 두세 번 다시 읽은 부분도 있었다.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의 보충의견이다. 두 대법관은 두 사람이 한국 사회에 여전한 편견과 차별을 감내하고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린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둔 실존적 결단”이라고 인정하며 “원고가 법원에 (자신의 권리를) 물은 이상 법원은 답변하여야 한다”라고 밝혔다.
두 대법관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성욱은 특히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판결문은 딱딱하잖아요. 대법원 판결문이면 더 딱딱할 것 같고요. 그런데 판사가 톨스토이 소설을 인용하면서까지 이 판결문을 읽게 될 사람을 진심으로 설득하려는 게 느껴졌어요. 그 정도로 저희의 입장을 생각해주고, 존중해줘서 고마웠어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건보공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튿날, 다른 성소수자 커플이 건보공단에 피부양자 등록을 문의했다. 건보공단은 “내부 지침을 마련하는 대로 절차를 안내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성욱은 내부 지침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처음에 제가 신청했을 때처럼 곧바로 피부양자 등록을 하면 돼요. 이미 해봤고, 가능하잖아요. 동성 커플이라고 이성 커플과 달리 별도의 절차가 필요한가요?”
너무 ‘당연한’ 판결이 가지는 한계
용민은 이번 판결이 당연하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가지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결혼한 이성 부부가 누리는 권리가 1000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한 권리를 가지고 4년씩 싸울 수는 없잖아요. 4000년이 걸릴 테니까요.” 류민희 변호사도 이번 판결이 “작은 구제”에 불과한 점을 짚었다. “소송 한 건의 이면에는 법정까지 갈 여력이 없어 포기한 수많은 피해자가 있어요. 일상에서 차별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애초에 차별을 당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아요. 기회가 있어도 먼저 포기해버리는 거죠. 드러나지 않은 이런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예방이에요. 차별에는 예방이 제일 좋아요. 한 개인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4년씩 싸워야 하는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게 맞죠. 개별 권리를 하나하나 구제할 수 없다면 권리 전체를 통째로 보장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고요.”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는 이번 판결을 징검다리 삼아 동성혼 법제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품 메뉴’ 대신 한 번에 모든 단품이 나오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다. 시기상조 아니냐는 질문에 류민희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다. “2023년 5월 갤럽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40%가 찬성한다고 답했어요. 40%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거든요.”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가족구성권 3법 중 하나로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과 함께 혼인평등법을 최초로 발의하기도 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23년 6월부터는 성소수자 인권단체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가 공동으로 ‘모두의 결혼’이라는 동성혼 법제화 캠페인을 시작했다.
성욱과 용민도 동성혼 법제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해외에서 혼인신고를 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첫 혼인신고를 하고 싶어요. 이렇게 질 수 없다는, 일종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요(용민).” “실제 권리를 갖는 게 중요한데 해외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건 상징에 불과하니까요(성욱).” 현재 전 세계에서 동성혼을 인정하는 나라는 37개국, 그중에서 아시아권에서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는 세 곳(타이완·네팔·타이)이다.
최근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 전향적인 법원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주요 판결 내용을 정리했다.
※ 동성 군인 간 합의한 성행위는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22년 4월21일)
2016년 두 남성 군인이 군대 밖 숙소에서 성행위를 한 혐의로 군형법 제92조의6에 따라 기소됐다. 대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진 성행위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 미성년 자녀를 둔 트랜스젠더도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22년 11월24일)
2012년 결혼해 자녀를 둔 남성이 2018년 이혼한 뒤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으로 성별 정정을 신청했으나, “미성년 자녀가 받을 여러 충격과 혼란 등을 고려하면 성별 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한 2011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정정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성전환된 부모와 자녀 사이의 다양한 상황을 살펴보지 않은 채 미성년 자녀가 있다고 성별 정정을 막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인 의미에서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 트랜스젠더에게 공중화장실 이용을 자제하라고 말한 경찰이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2024년 6월14일)
2020년 성전환 수술을 받은 한 여성이 ‘여성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가 경찰이 출동할 경우 성별 정정 신고 접수증을 제시하면 문제가 없는지’ 문의하자 한 경찰이 “하루 이틀 참는 게 힘든 것도 아닌데 한동안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문의한 여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8-1부(부장 정인재)는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편적 인권”이라며 국가가 원고에게 손해배상금 3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를 교단에서 출교시키는 효력을 정지한다는 수원지방법원의 판결(2024년 7월18일)
기독교 감리회 교단 내에서 법원 역할을 하는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2020~2022년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연 이동환 목사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교회법을 어겼다고 보고 출교를 선고했다. 이 목사는 이에 맞서 출교 무효 확인 소송을 시작했고, 해당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위원회의 출교 처분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민사11부(재판장 송중호)는 “동성애의 규범적 평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고,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는 점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재판위원회의 출교 판결에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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