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조상들 겨울에 즐겼다지만…그래도 여름이 제철 ‘냉면’

관리자 2024. 8.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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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 토박이 선비 홍석모(1781∼1850년)는 만 10세에 조부 홍양호(1724∼1802년)가 평안도 관찰사로 평양에 부임할 때 함께 가서 1년 동안 머물렀다.

메밀국수인 평양냉면, 농마국수인 함흥냉면과 함께 18세기 이후 왕실에서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는 시기에 일상 식사와 잔치 때 먹었던 '골동면'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대한제국을 찾았던 몇몇 미국인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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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냉면
조선시대 평안·황해도서 유명
동치미에 메밀국수 말아 먹어
함경도선 감자전분으로 반죽
가위로 잘라먹을 정도로 질겨
왕실에서 먹던 ‘골동면’도 눈길
골동면

 

조선 후기 서울 토박이 선비 홍석모(1781∼1850년)는 만 10세에 조부 홍양호(1724∼1802년)가 평안도 관찰사로 평양에 부임할 때 함께 가서 1년 동안 머물렀다. 이때 기억을 되살린 듯 자신의 책 ‘동국세시기’(1849년) ‘음력 11월 월내’에서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냉면(冷麵)이라고 부른다. 또 국수에 여러가지 채소와 배, 밤, 쇠고기·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麵)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홍석모는 마지막에 “관서(關西)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관서’는 한반도 북서부지역인 평안도와 황해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에도 냉면 본고장은 평안도 안에서도 특히 평양이었다. 18∼19세기 조선 지식인 중에는 평양에 가서 겨울은 물론이고 봄에도 냉면을 먹었다고 기록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그즈음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지도인 ‘기성전도(箕城全圖)’에는 대동강 주변 가옥 사이에 ‘향동(香洞) 냉면가(冷麵家)’라는 지명이 적혀 있다. 아마도 당시 평양에는 냉면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밀집한 거리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황해도 역시 냉면으로 유명했다. 1797년 음력 윤유월부터 1799년 음력 1월까지 곡산(지금의 황해북도 곡산군)의 부사로 재직했던 정약용(1762∼1836년)은 “(음력) 시월 들어 서관(西關)에 한자나 눈이 쌓이면 (중략) 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김치 푸르네”라는 한시를 남겼다. 서관은 관서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해방 이후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월남민들이 기억하는 냉면은 메밀가루를 익반죽해 국수틀에서 뽑은 다음, 꽁꽁 언 동치미에 말아낸 국수였다. 메밀이나 동치미나 겨울이 제철이다. 곧 지금의 평양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

사실 ‘냉면’이란 이름 그 자체는 차갑게 먹는 국수를 뜻한다. 오늘날 한국인 대부분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냉면의 대표 주자로 여기면서 한여름에 먹는 음식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평양냉면은 1920년대가 돼서야 서울에서 여름철 최고 인기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의 여름 냉면은 겨울에 한강에서 캐낸 얼음을 전기와 암모니아로 녹지 않게 한 다음, 이 얼음에 육수나 글루탐산나트륨(MSG)을 넣고 차가운 국물을 만든 뒤 메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뽑아낸 국수를 만 음식이었다. 이 국수가 1980년대까지 여름에 즐겨 먹었던 평양냉면이다.

함경도 사람들은 냉면을 ‘농마국수’라고 불렀다. ‘농마’는 감자전분을 가리키는 지역어다. 감자전분 가루를 익반죽해 국수틀로 눌러서 국수를 뽑는다. 농마국수의 면은 몹시 질기다. 이즈음 사람들이 ‘함흥냉면’이라고 부르면서 조리용 가위로 잘라 먹는 냉면이 바로 농마국수다.

메밀국수인 평양냉면, 농마국수인 함흥냉면과 함께 18세기 이후 왕실에서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는 시기에 일상 식사와 잔치 때 먹었던 ‘골동면’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대한제국을 찾았던 몇몇 미국인도 먹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역사에서 사라지면서 이 왕실 골동면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2010년대부터 젊은이들은 시인 백석(1912∼1996년)이 말한 “희멀겋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싱거운” 메밀냉면에 열광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나는 메밀로는 메밀냉면을 한달치도 못 만든다. 이것이 국산 메밀을 기르는 농가가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교수·음식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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