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여름대작이 정말로 사라졌다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극장가 여름 대작이 정말로 사라졌다. 정확히 1년 전인 2023년 8월 <'여름 대작'이라는 말 이젠 사라질지도>라는 칼럼에서 '더운 여름에는 영화관에 간다'는 전통적인 인식이 더는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고 썼다. 편안한 내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OTT를 비롯한 다양한 볼거리를 장애 없이 즐기는 시대가 된 만큼, 200~300억 원대의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쓰고도 판에 박힌 결과물을 양산해 내는 상업영화를 여름 극장가에 한꺼번에 내어놓는다고 한들 더는 관객의 발걸음을 끌어들일 수 없을 거란 얘기였다.
[관련기사 : 박꽃의 영화뜰-'여름 대작'이라는 말 이젠 사라질지도]
복기하자면, 지난 2022년과 2023년 한국 영화계가 선보인 여름대작은 대부분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외계+인', '한산: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2022년)와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년) 등 8편이 출사표를 냈고, 그 중 '한산:용의 출현'과 '밀수'만이 700만,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했다. '헌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300~400만 관객을 모으며 체면을 지켰으나 유독 큰 제작비를 투입한 데다가 이름값 있는 감독까지 모셔 와 제작한 '외계+인', '비상선언', '더 문', '비공식작전'은 50~2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치며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2편(25%)이 다소간 이득을 낸 데 비하면 2편(25%)은 손해를 방어하는 정도에 그쳤고 절반(50%)은 뼈아픈 손실을 낸 것이다.
주목할 만한 건 두 해 연속 '실패의 시기'를 거친 배급사들의 입장 차이다. '외계+인'과 '더 문'으로 2년 연속 쓴맛을 본 CJ ENM은 올해도 여름 시장에 제작비 200억 원에 달하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7월12일)를 내놨지만 70만 관객을 채 넘기지 못하는 실패를 반복했고, 한때 한국 영화계를 호령했던 영광의 시절을 무대 뒤로 완전히 퇴장시키다시피 한 암울한 상황을 지나고 있다.
반면 '비상선언'과 '비공식작전'으로 2년 연속 큰 타격을 입었던 쇼박스는 봄바람이 채 불기도 전인 지난 2월 장르영화 '파묘'를 선보이면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회복 흐름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올해 '파묘'와 함께 유일하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또 다른 한국영화인 '범죄도시4'를 배급한 플러스엠 역시 개봉 시점을 전통적인 비수기로 손꼽히는 4월로 낙점하며 여름 시장을 완전히 피해 가는 전략을 택했다.
올해 여름 시장 라인업을 살펴보면 주요 배급사들의 변화 기조가 확연히 감지된다. 매주 개봉작이 꽉 들어차 있는 여느 여름과 같은 상황이지만 200~300억대 제작비를 쏟아 넣은 판에 박힌 대작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도 작품만의 특색을 명확히 하고 타깃을 분명히 한 작품의 활약이 돋보이는 양상이다.
NEW가 배급한 이성민, 이희준 주연의 버디코미디 '핸섬가이즈(6월26일)는 50억 원의 제작비로 175만 명을 동원하며 일찍이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고, 플러스엠이 배급한 이제훈, 구교환 주연의 추적액션극 '탈주'(7월3일)는 85억 원 수준의 제작비를 투입해 25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장기 상영 중이다. 롯데 배급작인 조정석 주연의 젠더스위치코미디 '파일럿'(7월31일) 역시 제작비는 100억 원 미만임에도 개봉 첫 주말에 170만 명을 동원하며 좋은 분위기를 탔다.
그러는 사이 극장가에서는 새로운 가능성도 포착되는 중이다. '장기 상영'이 가능해졌다는 건 특히나 고무적이다. 개봉 직후인 1~2주 안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끝장을 보려 하던 대형 배급사의 여름 시장 관습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체급이 작은 영화들이 개봉 한 달을 훌쩍 넘기고도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얻고 있다. '탈주'의 경우 개봉 첫날 1200개 상영관을 확보했는데 한 달을 지난 5주 차에도 700개 관을 지키며 첫 주의 60%에 달하는 상영 기회를 수성할 수 있었다. 잘 만들어진 영화가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된 셈이다.
여름 대작의 상영관 독점이 주춤한 상황에서 예술영화들도 기회를 얻는 모양새다. 나치 시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난 6월 개봉 이후 줄곧 상영하며 19만 관객을 넘어섰고, 야쿠쇼 코지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소리 소문 없는 지지를 받으며 8만 명을 돌파했다. 이 모든 변화의 흐름이 내년 여름 시장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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