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포기한듯했던 '강아지'가…폴짝폴짝 뜁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처음 땅 밟으니 좋아서 겅중겅중, 달라진 모습에 울컥
오랜 번식장 생활로 치료 필요…발 꺾이고, 종양에, 자궁 터져 죽을 뻔
18마리 치료비만 3000만원 "병원 원장님께 사정했어요"
번식장으로 수익 낸 업자, 관리 감독 부실 지자체는 나몰라라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쓰고 있습니다. 해봐야 깊이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지요. 격주 토요일 아침이면 오래 품은 기사들이 나갑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행복합니다. 여전한 숙제가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를 가끔씩 풀려 합니다.
믿기지 않아 물었다. 귀 젖히고 꼬리치며 달려오던 하얗고 작은 강아지들. 꼭대기의 반가움(유계영 시인 책, 꼭대기의 수줍음에서 영감)을 표현하는 몸짓들. 뒷발로만 몸을 세워 껑충껑충 뛰며 바라보는 눈빛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가 하나하나 품에 안아준 사람. 동물 구조 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의 이효정 대표가 답했다.
"되게 밝아졌지요. 처음엔 다리로 땅도 못 딛고 납작 엎드려 있었어요."
그 작은 몸으로 견뎌야 했던 일들을 알기에, 죄스러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을 향해 반기고 있단 게.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닐지라도 그랬다.
여기는 인천에 있는 도로시지켜줄개 보호센터. 전남 함평 번식장에서 구해낸 강아지들을 20일 만에 보러 간 자리였다.
1. 다른 번식장에 팔려 가 강제 임신과 출산을, 더 학대당하다가 죽는다.
2. 보신탕집에 팔려 가 고기가 된다.
3. 지자체 보호소에 가서 공고 기한(열흘)만큼 살다가 안락사당한다.
평생을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삶. 그 끝마저 그리되진 않았으면 좋겠단 이들이 새벽부터 달려왔다. 무려 동물 구조 단체 네 곳이 힘을 합쳐야 했다. 코리안독스, 도로시지켜줄개, 고유거애니밴드, 다솜.
비닐하우스 안에 철제 뜬장이 있었다. 처참한 광경 속에서 작은 품종견들이 짖었다. 뜬장에 작은 발이 자꾸 빠졌다. 좁은 곳에 넣어두니 싸워서 한쪽 눈이 뜯기고, 발이 꺾이고, 유선 종양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걸 체념한 듯 구석에 웅크린 강아지도 있었다. 그리될 수밖에 없는, 우리가 못 본 광경은 뭐였을까.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쓴, 하재영 작가가 목도하고 담은 실태. 그 책에 담긴, 한때는 번식업을 했었던 박운선 동물보호단체 행강 대표 이야기가 이랬다.
그때 구한 번식장 강아지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번에도 동물권 높이기에 진심인, 애정하는 유튜브 '개st하우스' 팀과 함께했다(구독과 좋아요 필수!).
"달콤새콤하게 살라고 과일 이름으로 지었어요. 망고, 라임이, 키위, 자두, 피치. 여긴 그래도 덜 아픈 애들 다섯이에요."
덜 아픈 아이들. 행간의 의미를 보면 아프지 않은 아이는 없단 것. 그런 공간에서 수년간 강제 임신과 출산만 했는데 오죽할까. 애달픈 맘으로 보호 공간에 들어서는데, 예상과 달리 순식간에 마음이 환해졌다.
땅을 밟고 온 힘을 다해 달려와서였다. 헥헥, 힉힉, 학학. 작은 귀를 팔랑거리며 꼬리콥터를 흔드는 몸짓. 반갑다는 표현. 그 평범한 광경에 울컥했던 건, 이들이 지냈던 곳을 봤었기 때문에. 작은 발이 계속 빠지는 뜬장이었기에, 땅을 딛는 것마저 행복해 보였다.
딸랑이공 장난감을 갖고 놀아줬다. 왼쪽, 오른쪽으로 휙휙 움직일 때마다 작은 고개가 따라왔다. 공을 던지자 총총 달려가더니 물었다. 이런 놀이도 처음이었으리라. 걷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고, 택배가 오니 멍멍 짖기도 하고. 초점 없던 아이들이 이제야 살아 있는 느낌이라 좋았다.
한참을 놀던 자두랑 라임이가 조용하길래 봤더니, 한쪽에서 코오,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오후 햇볕이 드리웠다. 뚫리지 않은 평온한 땅 위에서 그리 쉬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계속 바라보게 됐다.
"다리가 소실된 아이들도 되게 많고, (보호센터에) 들어오자마자 수종으로 자궁이 터지기도 했고요. 번식장 중에서도 가장 힘들게 지내온 아이들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많아요."
지자체 보호소에 갔다면 '자연사'했을 확률도 높았을 거라고. 그 정도 상태였다.
귀가 잘린 녀석들도 꽤 됐다. 이효정 대표는 "요즘엔 아기 강아지들을 낳으면 귀를 자르기도 한단다. 짧은 귀가 귀엽고 예쁘다고 (사람들이) 그래서…"라고 했다. 성견은 미용하다 실수로 그럴 수도 있는데, 이건 실수 치고는 너무 딱 잘라놓았다고. 얼마나 아팠겠냐고 작은 귀를 어루만졌다.
함평 번식장 강아지 60마리 중 도로시지켜줄개에서 구조한 개체가 18마리. 엄청난 부담이란 걸 잘 알았다. 치료가 안 필요한 애들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이기에.
치료가 필요한 애들이 격리된 방을 보러 갔다. 원래는 활동가와 봉사자들 쉬는 곳인데, 편히 있으라고 시원한 공간을 내어주었다. 뒷다리에 깁스 치료를 한 애플이가 절뚝이면서 다가와 반겼다. 코끝이 저릿하게 데워졌다.
"애플이는 다리가 없었던 친구였잖아요. 옆으로 완전히 이렇게 돼 있어서. 동물병원 원장님께 '원장님, 진짜 시급한 애가 있어요. 도와주세요' 해서 수술해주셨어요."
1000만원으로 급한 애들부터 수술했으나, 못한 애들이 훨씬 더 많단다. 치아, 다리, 종양은 기본이고, 심장병이 있는 친구도 있다고. 레몬이는 고환이 터져 안에서 다 흘러나왔다.
역시 수술해야 하는 자몽이를 품에 안았다. 인간이 바라는 대로 너무나 작게 만들어서, 행여나 부서질까 조심조심하느라 염려하며. 허벅지 위에 올려 네 다릴 편하게 해주고, 오른팔에 고개를 얹게 해주었다. 두 손가락으로 머릴 살살 만져주니 작은 머리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콩닥거리던 심장박동이 느려졌다. 평온히 졸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실은 이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구나, 어렵게 지냈단 걸 알기에 더 안타깝기도 하거든요. 다시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살다 보면 사랑을 줄 수 있고, 더 큰 사랑을 이 친구들에게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단 한 친구도 물거나 이러지 않아요. 정말 착한 친구들이에요."
그간 그리 고생했는데 이제라도 사랑받는 삶이었으면 싶다고. 이효정 대표도 그걸 절실히 바라기에, 동분서주 애쓰고 있었다.
뭣보다 좋은 가족을 만나는 것.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치료'와 '임시보호'다. 이효정 대표가 말했다.
"이 친구들이 사실 그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까, 사람 손에서, 또 집에서 지내는 걸 못 해봤잖아요. 적게는 2개월이라도 치료하는 기간 동안 알려주는 거예요. '집은 이런 곳이야, 이렇게 가족하고 살 수 있어'하고요. 그런 기회를 마련해주실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임시보호가 가장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아직 치료받지 못한 아이들 비용도 걱정이란다. 기본 검진은 다 마쳤고, 1차적으로 심한 강아지들 먼저 치료했으나,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개체가 많다고. 최소 3000만원 이상 들 거라 했다. 재정 부족 때문에 걱정이란다.
"구조할 때 이 친구가 아픈지 안 아픈지 알 수 없고, 제 능력 밖으로 생겨나는 일이 많거든요. 창피하고 맘 아프지만, 이번에 구한 아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못 하고 있었던 상황이에요. 빨리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8마리에 대한 치료비만 3000만원. 그렇다면 번식장에 남은 60마리 기준으로 단순히 잡으면, 최소 1억원.
그걸로 30년 넘게 돈을 번 번식업자. 불법으로 하는 걸 잡아내지 못한 관할 지자체 전남 함평군청. 이들은 쏙 빠지고, 구조해 살리고, 치료하고, 가족을 찾아주려는 이들만 이리 고생이란 게.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김성호 한국성서대 교수가, 이에 대한 해결책이 이랬으면 싶다고 했다.
"구조한 아이들을 민간 단체나 개인들이 고생해 치료하고 보살피는 게 넌센스입니다. 번식업자가 경제적 이득은 다 챙기고 이렇게 내버리는 건, 공장 폐수 내버리고 시민들이 청소하고 정화 비용 내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업체에게 법적 처벌을 최대한 받게 하고, 추후 드는 비용은 구상권을 청구해야 합니다."
최근 경복궁 벽에 낙서한 이에게 복원 비용을 청구했듯, 번식업으로 강아지들을 피폐하게 병들게 한 이들에게도 비용 청구를 해야한단 얘기였다. 법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고.
불법 번식장을 방치한 지자체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번식장은 감독 부실인데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아느냐"며 "관리와 감독 부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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