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변한 걸까, 박성재 법무장관의 경우 [뉴스룸에서]
이순혁 | 이슈부국장
2006년 3월 정기인사로 출입처였던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이 대거 교체됐다. 검찰을 권력지향적인 디엔에이(DNA)가 내장된 균질적인 검사들의 집단으로 보는 이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부장검사마다 스타일이 제각각이었다. 사법연수원 17기(1985년 사법시험 합격)들이 주축이었는데, 롤러블 키보드 같은 신문물을 사용하는 전자제품 덕후에 영어 원서 교양서를 틈틈이 읽는 이도 있었고, 인생 달관한 듯한 태도에 기자와 대면은 죄다 거절하는 이도 있었다(조선일보 출입기자가 찾아가 ‘차 한잔도 못 주느냐’며 물러서지 않자, ‘문 앞 여직원한테 얘기할 테니 마시고 가라’고 응대해 화제가 됐다).
그런 이 가운데 박성재 금융조사부장도 있었다. 자본시장·금융 관련 범죄 등 전담부서로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금조부는 특수부 이상으로 선호도가 높았는데, ‘감찰’ 관련 경력이 좀 도드라질 뿐 검사로서 특출나다는 평은 못 받던 이가 요직에 발탁됐다며 주목을 받았다. 그런 박 부장은 출근 첫날부터 사무실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가며 검사와 수사관들 군기를 잡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전화기를 박살 냈다는 얘기도 있었다. 재벌 회장부터 주식시장 큰손들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많은 이들을 상대하는 부서 수사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던 때였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분위기 일신을 주문하며 원칙주의자이자 지역(TK) 후배인 박 부장을 앉힌 것이라는 평이 돌았다.
조인트에 기물 파손까지, 요즘 같으면 ‘갑질’ 신고받기 딱 좋은 방식의 기강 잡기였지만 사심 없는 부서 운영으로 금세 검사들의 마음을 얻었다. 센 선배 전관 변호사가 붙어도 웬만한 청탁은 자기 선에서 끊어냈고, 대신 검사들에게 제대로 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외부 인사와 저녁 약속도 거의 없었고 시골(경북 청도) 출신이라 그런지 저녁 9시 뉴스를 보다 일찍 잠들어 수뇌부 호출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장 때도 사건 처리를 깐깐하게 해 변호사 업계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가 2017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자, ‘누구한테 듣기 좋은 말도 할 줄 모르는 양반이 변호사 일은 제대로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후배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였다. 그는 우직한 ‘갱상도 사나이’ 같은 검사였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후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1994~95년 대구지검 형사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명절날이면 바로 옆 부서 당시 막내 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불러 아침 식사를 챙겨줬다는 인연이 회자됐다. 대구고검장으로 있던 2014년에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팀을 이끌다 좌천돼 온 윤 대통령을 품어줬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사 시절 그를 아는 이들 상당수는 전임자 시절 과도하게 정치화된 법무·검찰을 조금이나마 바로 세울 것으로 기대했다. 2006년 박 부장이 이끌던 금조부에서 삼성그룹 편법 상속 의혹(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수사하고, 2011년 제주지검에서도 검사장과 부장검사로 박 장관과 호흡을 맞췄던 이원석 검찰총장은 박 장관 지명 소식에 “곁불 쬐고 다니던 분 아니다”라며 주변에 존경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하지만 ‘김건희 수사’가 끼어들면서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이 총장이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휘하자, 용산은 전격적인 인사로 서울중앙지검 수뇌부를 물갈이했다. 삼척동자도 알 법한 ‘김건희 수사에 따른 총장 패싱 인사’였건만, 출근길 기자의 질문에 박 장관은 “장관이 인사 제청권자”라며 “(총장이 인사) 시기를 언제 해 달라는 부분이 있었다고 하면 그 내용대로 다 받아들여야만 인사를 할 수 있는 거냐”며 쏘아붙였다. 김 여사 소환조사에 반대하며, 지휘권 없는 총장은 나서지 말라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상대적일지언정 윗사람 눈치 덜 보던 검사로서의 우직함은 사라지고, 대통령 부부 호위무사로서의 뚝심만 남은 셈이다. 믿는 후배였던 이원석 총장과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사실 고위직에 오른 뒤 ‘사람이 변했다’는 평가를 받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박 장관을 두고도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런저런 해석들이 나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한 걸까? 아니 시대가 변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주변 모두가 속고 살아온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어리석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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